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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고양이의 봄…‘길 위의 육아’는 너무 고되다

등록 2020-03-20 11:27수정 2020-04-09 10:31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짧은 기간 2번 출산 뒤 로드킬…어미 떠난 자리에 새끼 3마리만
봄, 길고양이의 생존을 책임질 시기…TNR 절실
로드킬 당한 어미 길고양이가 남기고 간 새끼 세 마리. 어찌나 어미가 살뜰히 보살폈는지 새끼들은 포동포동하고 깨끗했다.
로드킬 당한 어미 길고양이가 남기고 간 새끼 세 마리. 어찌나 어미가 살뜰히 보살폈는지 새끼들은 포동포동하고 깨끗했다.

* TNR : 안전하게 포획(Trap)하여 피임수술(중성화, Neuter)을 마친 뒤에 제자리 방사(Return)하는 것을 뜻하는 국제적인 공용어입니다. 구분을 하기 위해 TNR된 고양이들은 왼쪽 귀 끝이 0.9cm가량 잘려져 있습니다.

* 케어테이커(Caretaker) : 길고양이들에게 먹이 급여와 구충, TNR을 제공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을 흔히 ‘캣맘’ ‘캣대디’로 부릅니다. 카라는 돌보는 고양이와 사람의 관계가 ‘자녀-부모’의 관계로만 정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케어테이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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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미 고양이의 죽음

서울 서교동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도보로 10분, 차로 3분 정도 걸리는 삼거리. 그 동네엔 고양이들을 돌보는 케어테이커들이 많다.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도 있어 삼삼오오 돌보는 고양이들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TNR을 진행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 동네에서 밥 자리를 차지한 고양이들은 사냥감이 없는 척박한 도시환경에서도 무던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오지 않는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고양이. 제보자 제공
오지 않는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고양이. 제보자 제공

새끼들을 키우는 어미 고양이 한 마리도 같은 이유로 ‘두 집 살림’을 너끈히 해내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는 동네 케어테이커들의 TNR 대상이었으나, 손쓸 새 없이 두 번을 연달아 임신과 출산을 해 결국 포획을 잠시 미뤄둔 녀석이었다. 어미는 4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두 군데의 은신처를 마련했다. 한 은신처에서는 6~7개월령의 새끼들이 독립을 준비했고, 반대쪽 은신처에서는 2~3주령의 새끼들이 걸음마를 뗐다. 한 그룹의 새끼들을 키워내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미는 케어테이커들이 부어주는 사료를 먹으며 육아를 해냈다.

3m 높이 담벼락 아래에서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을 돌보고 있다. 제보자 제공
3m 높이 담벼락 아래에서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을 돌보고 있다. 제보자 제공

사고는 지난주에 일어났다. 어미는 도로에 차량이 지나다니는지를 살펴보고 길을 건널 만큼 영리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달려온 오토바이를 피할 재간은 없었다. 그 어떤 고양이라도 피하지 못했을 사고였다. 어미는 4차선 도로를 거의 다 건너서 명을 달리했다. 마침 평소 어미를 돌보던 케어테이커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케어테이커는 어미의 사체를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남겨진 2~3주령 새끼들은 오지 않는 어미 고양이를 기다리며 밤새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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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 담벼락 아래 새끼 고양이들

어미 고양이의 6~7개월령 새끼들은 평소 어미와 함께 이용하던 급식소에 터를 잡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이들은 독립이 진행되는 시기이기도 해서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2~3주령의 새끼들이었다. 어미 고양이는 어느 동물병원 옆의 좁고 깊은 담벼락 아래에서 삼 남매를 기르고 있었다. 지하로 깊게 내려간 담벼락 아래는 사람 손이 절대 닿을 수 없었기에 은신처로 제격이었다. 문제는 새끼들이 어미 없이는 올라올 수 없다는 것이었고, 사람도 절대 내려가지 못하는 구조였다.

사람이 고개만 겨우 들이밀 수 있는 폭이여서, 구조에 애를 많이 먹었다.
사람이 고개만 겨우 들이밀 수 있는 폭이여서, 구조에 애를 많이 먹었다.

사람이 고개만 겨우 들이밀 수 있는 폭이여서, 구조에 애를 많이 먹었다.
사람이 고개만 겨우 들이밀 수 있는 폭이여서, 구조에 애를 많이 먹었다.

케어테이커들이 카라에 구조를 요청해 현장에 달려갔을 때는 남매들이 사람의 기척에 놀라 어딘가에 숨어버린 뒤였다. 설상가상 좁은 담벼락 위에는 한 뼘 높이의 차양도 설치되어 있어 수색하기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새끼들은 몇 시간 뒤에 다시 나타났다. 활동가들은 재빨리 포획틀을 끈으로 내려 새끼들이 숨었던 벽의 구멍을 막았다. 이후 구조 도구를 사용해 새끼들을 건져 올렸다.

미리 준비해 간 구조장비로 고양이를 포획했다.
미리 준비해 간 구조장비로 고양이를 포획했다.

두 마리 새끼는 순조롭게 포획했지만 남은 한 마리는 또다시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기다림의 시간 끝에 옆 동물병원에서 고양이를 걱정하던 테크니션 한 분이 포획에 성공했다. 그렇게 손 닿을 수 없던 곳에 놓였던 아기고양이 세 마리의 구조가 성공했다. 아기 고양이들은 하룻밤 정도 먹지 못한 상태였지만, 어미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키웠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포동포동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아기고양이들은 현재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가족과의 삶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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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

케어테이커들은 고양이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다. 제보자를 비롯해 이들이 없었다면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을 돌볼 만큼의 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미의 사체는 도로에 방치되어 있다가 소각처리 됐을 것이고, 새끼들은 담벼락 아래에서 오지 않을 어미를 기다리다가 굶거나 얼어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길고양이를 돌본 사람들 덕분에 어미는 외롭지 않게 마지막 길을 떠났고, 새끼들은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구조된 아기 고양이. 어미가 아주 예쁘게 키워놨다.
구조된 아기 고양이. 어미가 아주 예쁘게 키워놨다.

도심 속 고양이들은 무척 배고프게 산다. 자연적으로 사냥할 작은 포유류나 곤충이 적다. 길고양이 급식소가 있다고 해도, 그 영역에 고양이들의 숫자가 많으면 대개 젊고 힘센 개체들이 밥 자리를 선점한다. 한정적인 밥 자리에서 약하거나 나이 든 개체는 도태된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이기에 그들의 도태는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개발로 고양이들의 풍부한 먹이 자원을 빼앗은 것은 사람이고, 새끼들로부터 길을 건너던 어미를 빼앗아 버린 것도 사람이다. 도시에서의 고양이의 번식과 죽음은 인간과 도시 문명을 떼려야 뗄 수 없다.

로드킬로 무지개다리를 건넌 어미 고양이의 장례식 사진.
로드킬로 무지개다리를 건넌 어미 고양이의 장례식 사진.

다시 봄이 온다. 일조량이 많아지며 고양이들의 본격적인 번식이 시작된다. 돌보는 고양이가 있다면, 꼭 TNR을 해줬으면 좋겠다. TNR을 해 주면 고양이들은 발정 스트레스와 번식기의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길고양이들 대부분 TNR이 된다면 그 동네의 고양이들은 영역에서 먹이 다툼 할 일이 적게 살아갈 수 있다. TNR은 개별적인 고양이 한 마리에게도, 길 위의 생태에서도 무척 중요한 작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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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번식기, TNR을 말하는 이유

척박한 길 위에 태어난 고양이들의 생존을 위해 책임을 질 계절이 됐다.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동네가 상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에 의해 죽을 뻔했고 사람에 의해 삶을 살아가게 된, 우리가 구조한 사랑스러운 고양이 남매들에게도 최고의 가족이 생기기를!

글·사진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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