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들이 도착했을 때 북극여우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툰트라 지대에 있어야 할 북극여우가 어쩌다 도시공원 잔디 위에서 자게 되었을까.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The beaut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에 등장한 포토그래퍼 숀 오코넬은 눈으로 뒤덮인 험난한 산에서 찾은 눈표범의 사진을 찍는다. 눈표범은 곧 사라지고, 남은 것은 사진 한장이다. 인간과 야생동물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선은 딱 거기까지. 그 정도가 참 이상적인 듯한데, 세상엔 정도를 지나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따사롭던 지난 10월, 서울 도심 공원에 북극여우가 나타났다. 공원 외곽의 건물 옥상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건물은 카라가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 근처에 있는 건물이었다. 곧 급식소 봉사자가 북극여우를 목격했고 우리에게 연락을 취했다. “개를 잘못 본 거 아니에요?” 의심하며 봉사자가 보내 준 사진을 봤지만 눈을 씻고 봐도 북극여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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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대형 포획틀과 각종 포획장비 등을 챙겨서 현장으로 향했다. 북극여우는 건물 옥상의 그늘 아래에서 평화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푸릇한 잔디 위에서 은빛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가 참 낯설었다. 북극여우는 우리를 보고서도 놀란 기척 없이 다시 꾸벅꾸벅 잠을 청했다.
포획틀에서 활동가들을 바라보는 북극여우. 눈을 피하거나 몸을 숨기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포획틀을 설치하고 미끼로 고양이용 캔을 까서 덜어놓았다. 북극여우가 그간 근처 고양이 급식소의 사료와 캔을 먹었기 때문일까. 여우는 우리가 잠시 자리를 피한 직후 포획틀로 들어갔다. 포획틀이 탕 닫히자 한 번 깜짝 놀라고서는 침착하게 밥그릇을 다 비우고 바닥에 숨겨둔 고양이 캔까지 다 먹었다. 그 후 포획틀을 벗어나려 시도하다가 다가온 활동가들의 가까이에 앉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참 많고 용감한 동물이었다.
서울 도심 공원 외곽 건물 옥상에 우두커니 서 있는 북극여우. 고양이 급식소 봉사자가 보내 준 사진.
북극여우는 개과 동물이기 때문에 지자체 보호소에 입소할 경우 홍역과 같은 바이러스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 우리는 여우의 안전을 위하여 이 개체의 유실·유기동물 신고는 하되 물리적인 보호는 별도의 공간에서 하고 싶다는 뜻을 지자체에 전달했는데, 지자체에서는 뜻밖의 대답을 해왔다. 여우는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보호소 입소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환경청의 입장도 비슷했다. 여우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야생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야생동물로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야생동물이면서 야생동물이 아니고, 유기동물이면서 유기동물이 아닌 북극여우. 카라와 지자체, 서울시와 환경청이 며칠 동안 논의한 끝에 북극여우는 유실·유기동물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다리를 절고 있는 북극여우의 상태를 고려해 CT 촬영 등 적절한 검사와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병원은 북극여우가 영구적으로 살기 적합한 공간은 아니었다. 동물원에 보내거나 개인에게 입양을 보낼 수도 없었다. 해외에 북극여우 생추어리가 있나 알아볼 단계였다.
한편, 여우의 거취를 두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북극여우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원래 ‘메인쿤’이라는 종의 고양이를 사려다가, 희귀동물을 파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여우가 헐값에 나와 분양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여우가 집에 온 이후 더울까 봐 마당에 풀어줬는데 탈출해 집 근처에서 발견한 사건 이후로 다시 탈출이 발생했다. 북극여우는 희귀동물 판매 샵에서부터 ‘집’에 온 지 딱 13일째 되는 날 두 번째 탈출을 감행했다. 4차선 도로를 두 번 건너 넓은 녹지와 숲이 있는 공원에 도착했을 때, 그 시멘트 길을 뒤로 하고 북극여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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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소유욕, 이기심과 무지함의 사이
우리는 그에게 북극여우의 소유자가 맞는지, 북극여우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거주환경은 북극여우에게 적합한지 등의 정보를 요청했다. 그는 북극여우의 검역증이나 수입신고필증 등의 공인된 문서 대신 ‘마리앤쥬’라는 업체와의 카톡 내용과 입금 내용을 보내줬다. 그리고 유기동물을 찾는 방법을 모르기에 별도로 북극여우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활동가들은 보호자의 자택에 가서 사육환경을 직접 점검했다. 일반적인 가정집이었고, 땅굴을 파 은신처를 만들고 하루 100km를 이동하는 북극여우의 생태와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여우 외에도 다른 종의 동물들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북극여우는 여기 있어서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북극여우의 ‘소유자’는 그가 맞았다. 북극여우를 돌려주지 않을 법적 근거가 없었다. 여우는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북극여우 ‘보호자’의 집안 환경 점검 중 만난 동물들. 보호자는 페릿, 기니피그, 햄스터와 개를 함께 기르고 있었다.
북극여우 ‘보호자’의 집안 환경 점검 중 만난 동물들. 보호자는 페릿, 기니피그, 햄스터와 개를 함께 기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북극여우도 이름을 부르면 온다’ ‘야생에서 잡아온 개체가 아니라 농장에서 반려용으로 번식된 동물이다’라고 말한다. 북극여우 또한 충분히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을 보면 북극여우를 단돈 백만원에 사고파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실내에서 북극여우를 기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핸들링이 가능하고 여우의 매매가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여우의 매매와 사육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사람의 이해나 만족을 위하여 동물의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수입해 규제 없이 판매하거나 번식시키는 일은 금지되어야 마땅하다. 국회에도 무분별한 야생동물의 거래를 막는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손을 내밀면 다가오는 영리한 동물일지언정 한반도의 실내에서 사는 것이 그 종의 복지를 저해한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북극여우가 지내다 탈출했다는 마당. 사진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마당에 계단에 설치되어 있어 북극여우가 탈출하기 용이했다. 여우는 행동욕구를 풀지 못해 발매트를 뜯으며 지낸 듯 하다.
야생의 북극여우를 반려동물로 삼기 위해서는 야생에서 포획한 최초의 개체로부터 10대에 걸쳐 번식을 시켜야 한다고 한다. ‘북극여우는 야생에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허가받은 농장에서 데려오는 것’이라는 변명이 유효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거기 있다.
그동안 사람의 울타리 안에서 감금되었을 북극여우의 조상들은 어떻게 애도해야 할까. 직접 확인하지 못한 그 농장이 북극여우들의 복지와 행복을 보장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사람과의 교감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박탈당한 자유보다 달콤할까? 많은 종의 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우리 활동가들도, 해외의 유망한 북극여우 보전팀에서 일했던 전문가도 아닐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야생동물은 야생에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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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북극여우는 멸종위기종은 아니다. 때문에 수입과 거래, 등록된 시설과 개인 가정에서의 사육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웅담 채취용으로 길러지는 반달가슴곰만 해도 일전에는 수입이 장려되는 동물이었다. 지금의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 Ⅰ급 동물이며, 인간의 잘못된 정책과 행정으로 고통받는 대표적인 동물로서 계속 조명되고 있다.
활동가들을 적극적으로 구경하는 북극여우. 어지간한 길고양이나 개도 이렇게 활동가들을 바라보지 않는데….
지금은 사각지대에 있는 북극여우의 법적 지위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난 2009년 UN 기후변화회의에 제출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보고서에는 북극여우가 기후변화로 멸종될 수 있는 동물임을 보고한 바 있다. 당장 국회에 발의된 개정법률안 중 하나도 야생동물의 판매와 인터넷 거래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나.
인간들의 사정을 차치하고서라도 북극여우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사육은 동물의 입장에서 무척 부당하다. 야생동물을 아무리 진심으로 사랑할지라도 동물에게 그 사랑은 소유욕과 집착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는 이상은 더더욱 그렇다.
정말로 그 종을 사랑한다면 야생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야생동물 납치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그 자체로 삶과 존엄을 인정하며 지켜주는 것, 그것이 동물을 위한 진짜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글·사진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여우는 보호자에게 돌아갔다. 보호자가 동물병원에 데리러 가자, 여우는 보호자에게 가지 않고 구석에 몸을 숨겼다. 결국 북극여우를 돌봐주던 병원 선생님들이 여우를 잡아 이동장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