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러시아 연해주의 한 고속도로에서 버스에 부닥친 어린 호랑이가 도로에 누워있다. 충돌 부상으로 수의사가 온 직후 숨졌다. 아무르호랑이 센터 제공.
2월 15일 러시아 연해주 고골레프카 마을 고속도로에서 아무르호랑이(백두산호랑이) 한 마리가 도로를 뛰어 건너다 버스에 치여 죽었다. 4∼5달 나이로 반드시 어미가 데리고 다닐 나이인데 왜 홀로 고속도로를 건넜을까. 어미는 밀렵 됐을까.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지만, 도로가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호랑이의 중요한 위협임을 보여준 사고였다.
러시아와 미국 연구자들은 2008년 ‘동물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1992∼2005년 원격 추적 장치를 단 아무르호랑이 24마리를 조사했더니 자연사한 4마리를 뺀 20마리가 사람과 관련한 원인으로 죽었다고 밝혔다. 확실한 밀렵이 10마리, 밀렵 의심이 8마리였고, 자동차와 충돌이 2마리였다. 밀렵이 압도적인데, 밀렵이 가능하게 된 주요 이유는 도로가 뚫려 외딴 지역까지 밀렵꾼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와 부닥치기 직전 고속도로로 뛰어든 어린 호랑이 모습. 왜 어미가 돌보지 않았는지는 수수께끼다. 아무르호랑이 센터 제공.
인도와 동남아의 다른 호랑이 아종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에서 2015∼2017년 사이에만 자동차와 충돌해 죽은 벵골호랑이는 적어도 10마리에 이른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도로가 건설되는 지역이고, 호랑이 보호구역도 예외가 아니다.
닐 카터 미국 미시간대 교수 등은 세계 13개국에 있는 호랑이의 핵심 서식지 116만㎢를 대상으로 도로의 위협을 평가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 4월 29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도로에서 5㎞ 이내여서 직·간접 영향을 받는 서식지가 전체 면적의 57%에 이른다”며 정책당국의 대책을 촉구했다.
세계 호랑이 서식지의 도로 밀도(m/ ㎞). 짙은 색일수록 밀도가 높다. 아래 그래프는 보호구역 안(옅은 색)과 밖의 도로 밀도. 카터 외 (2020) ‘사이언스 어드밴스’ 제공.
연구자들은 “호랑이의 핵심 서식지를 위협하는 도로만도 13만4000㎞에 이르며 이로 인해 호랑이와 그 먹이의 20%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호랑이 서식지와 도로 사이의 거리는 평균 3.9㎞에 불과했다. 호랑이 번식지의 43%도 도로 영향권으로 조사됐다.
도로가 호랑이에 끼치는 악영향은 교통사고만이 아니다. 도로는 서식지를 단절시켜 섬처럼 만든다. 외딴곳에 임도 등 도로가 뚫리면 밀렵꾼의 접근이 쉬워져 호랑이와 그 먹이 동물이 줄어들고 빛과 소음 공해가 늘어난다.
네팔의 동-서 고속도로는 여러 호랑이 서식지를 관통한다. 편도 1차선의 도로를 확장할 계획이 나와 있다. 닐 카터 제공.
호랑이의 생존에 꼭 필요한 지역이 모두 보호구역으로 관리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보호구역으로 묶이지 않은 곳에서 도로가 보호구역에서보다 평균 34% 더 촘촘하게 나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는 개발압력이 커 2017∼2020년 사이 도로가 2배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30년 동안 호랑이 서식지에 건설될 도로는 총 2만4000㎞로 추산된다”며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투자가 이런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호랑이 서식지의 16%를 차지하는 인도에서는 현재보다 32% 늘어난 1만4500㎞ 길이의 도로가 서식지 영향권에 건설될 예정이다. 인도보다 면적은 작지만, 네팔과 부탄도 현재보다 40% 이상 늘어난 각각 880㎞와 609㎞의 도로를 호랑이 서식지에 건설할 계획이다.
네팔 치트완 국립공원의 호랑이. 이 국립공원은 동-서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다. 닐 카터 제공.
연구자들은 “호랑이 서식지 곳곳에 뚫리는 도로는 호랑이 복원에 걱정스러운 경고 신호”라며 “도로를 건설할 때 정책결정자는 무엇보다 야생동물 집단에 끼칠 악영향을 줄이는 방안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용 저널:
Science Advances, DOI: 10.1126/sciadv.aaz9619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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