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장마 때문에 맑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라서 모처럼 날씨 좋은 날 히끄와 함께 누렸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반년이 훌쩍 지났다. K-방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은 코로나에 잘 대응했고, 우리가 선진국이라 믿고 있었던 다른 나라의 민낯을 보았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나 또한 히끄와 함께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늘었고, 여러 방면으로 몸을 사리고 있다.
히끄가 내 옆에 없었더라면 희망이 없는 시기였을 것 같다. 마스크를 잘 쓰고, 손을 자주 씻는 개인 방역을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안심할 즈음 정부와 국민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집단이 나타났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힘든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우로 인한 수해가 발생했다.
코로나19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지독한 장마였다. 올해 여름은 장마와 함께 시작해서 장마로 끝난 거나 다름없다. 장마가 끝나니,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가 왔다. 여름이면 히끄의 털이 더워 보이긴 했어도 뽀송뽀송했는데, 올해는 한 달 넘는 장마에 털옷이 눅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졸졸졸 따라다니는 나의 행복이다.
아직 올해가 몇달 남았지만, 2020년은 ‘코로나19’와 ‘장마’로 기억될 것 같다. 제주로 이주하기 전에는 아파트에 살아서 비가 많이 와도 잘 몰랐다.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나서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해마다 태풍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더구나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살기 때문에 태풍이 오기 전후 시설물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비가 가로로 내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얼마 전 분명히 예보에 비 온다는 말이 없어서 창문을 활짝 열고 외출했는데, 폭우가 내렸다. 걱정되어 CCTV로 히끄가 잘 있는지 확인해보니 히끄는 비가 들이쳐도 아무렇지 않게 침대 옆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히끄야, 일어나서 창문 좀 닫아!”라고 외쳐봤자 소용없겠지만, 그러고 싶을 정도로 애가 탔다. 예보에 없던 비라 금방 그칠 줄 알았는데 바람까지 불어서 비가 엄청 들이쳤다. 집에 돌아와 보니 침대 이불과 매트가 몽땅 젖어서 그날은 저녁 늦게까지 매트를 말리고, 이불 빨래를 해야 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외출한 날, 갑작스러운 폭우로 비가 들이쳐서 침대가 젖었다. 침대를 말리고, 이불을 세탁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 편한 고양이다.
이번 수해는 단순한 여름 장마가 아니라 기후 위기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없는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다. 특히 제주에 살다 보니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더 가까이 느낀다. 스스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기준을 정하고 나니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강박감이 생기고, 자기검열까지 하게 됐다.
동물과 함께 살고 있지만 육류 소비를 하고, 전기 오토바이를 타지만 비행기를 타서 탄소를 내뿜는다. 물건을 사면 오래 사용해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한편, 여름이면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놓는다.
완벽하지 않은 실천을 환경보호를 위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울 때가 많지만 사소할지라도 할 수 있는 만큼 지속가능한 행동을 꾸준히 한다면 차곡차곡 쌓여서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분명한 것은 조금이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는 거다.
이신아 히끄 아부지·<히끄네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