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 1회
신축년을 맞이하자 재작년 가을 도살장 앞에서 만났던 한 흰 소가 떠올랐다. 젖소라 불리는 이 소들은 살아서는 더이상 ‘빼앗길 것’이 없을 때 이곳에 도착하게 된다.
죽기 직전 동물들을 마주하는 일 비질은 도살장 앞을 찾아가 육식주의 사회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현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이다. 도살장 앞에 찾아가 죽음 직전 12시간 넘게 물조차 마시지 못한 동물들에게 마지막 물과 먹이를 주며 그들의 건강 상태들을 살피고 기록한다. 캐나다 동물권단체 ‘토론토 피그세이브’(Tronto Pig Save)가 2010년 처음 시작한 이 활동은 현재 전세계적인 풀뿌리 동물 해방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 2019년 4월부터 한국에서도 매주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도살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주로 책, 영상 등을 통해 축산동물의 현실을 알게 된 후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이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책과 영상만으로는 동물에 대한 폭력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비질은 도살장 앞에 찾아가 죽음 직전 12시간 이상 물조차 마시지 못한 동물들에게 마지막 물과 먹이를 주며 그들의 건강 상태들을 살피고 기록하는 동물권 활동이다.
수십 마리씩 실려오는 돼지와 달리 소들은 작은 트럭에 두어 마리가 묶여서 왔다.
죽음을 직감한 소의 눈물 깨달음은 나를 매주 도살장 앞으로 이끌었다. 눈빛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코앞에 둔 최악의 순간일지언정,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교감을 만들어냈다. 계속되는 만남은 나의 인간(중심)성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강력하게 흔든 이들 중에는 신축년의 주인공 ‘흰 소’가 있었다. 바로 ‘젖소’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흔히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마른 처참한 몰골로 도살장에 실려왔다. 수십 마리씩 실려오는 돼지와는 달리 이들은 1.5톤 작은 트럭에 한 두마리가 타고 있었다. 트럭 짐칸에 묶여있는 그들은 제대로 설 힘조차 없어 주저앉아 있었다. 간혹 상처 입은 소를 태우고 온 트럭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치료에는 돈이 들지만, 죽이면 돈을 버는 현실. 죽음을 직감한 소의 두 눈에서는 실제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질의 진행을 맡아 늘 침착하던 은영 활동가는 이날 소의 눈물을 보고 오열했다.
죽음을 직감한 소의 두 눈에서는 실제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젖, 새끼, 목숨을 빼앗긴 ‘가난한’ 소들 납치당한 어린 소는 ‘육우’라는 이름으로 살찌워 살해당하거나 엄마와 같은 젖소의 삶을 반복한다. 이것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업계의 표준, 즉 낙농업의 평범한 일상이 만들어내는 폭력과 빈곤이었다. 빼앗기는 삶만 살다 더이상 살아서는 빼앗길 게 없는 소들은 그렇게 주저앉은 채 우리를 쳐다봤다.
소는 낙농업의 최대 이익을 위해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학대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PETA 제공
‘과학적’으로 강제 개변된 몸으로 태어난 그들은 매일같이 젖(우유)을 빼앗긴다. 위애니멀 제공
간혹 상처 입은 소를 태우고 온 트럭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젖소’가 당연하지 않은 세상도 있다 그러나 도살장 앞의 오열 또한 우리 사회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것이었다. 도살장의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폭소를 터뜨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그들이 당황스러웠다. 그날의 통곡 뒤, 은영 활동가는 수일을 식음을 전폐한 채 울었다. 마치 송아지를 빼앗겨 창자가 끊어지듯 몇날 며칠을 우는 어미 소처럼. 놀랍게도 그 시간을 목격한 뒤, 나에게도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새롭게 열린 세계는 아예 다른 문법이 작동하고 있었다. 농장과 도살장이 없는 세상, 철창을 부수고 해방된 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서로 온기를 나누는 세상이었다. 은영 활동가의 통곡은 그 세계를 먼저 마주한 이의 슬픔이었다. 통곡에 당황하던 나도 어느 순간 지극히 단순하고 강력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죽이지 말라.’ 이 조직적인 살해를 용납하는 사회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확신이었다.
농장과 도살장이 없는 세상, 철창을 부수고 해방된 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서로 온기를 나누는 세상. 나에게도 그런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PETA 제공
흰 소의 해, 소들을 만나러 가자 흰 소의 해, 올해 무엇보다 먼저 이들을 만나자고 제안하고 싶다. 흐르는 눈물과 이마 위의 총알 자국, 우리는 만남을 통해서만 세상의 맥락을 짚을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숲 파괴, 이주노동자의 죽음과 야생동물 학살, 기후위기 등 모든 재난은 내가 만났던 가난한 흰 소의 비극과 연결되어 있다. 고통스러운 모습을 피하고 싶다는 처음의 욕망을 넘어 진실의 ‘증인’으로 나설 때, 우리는 동물해방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비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글·사진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애니멀피플 섬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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