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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동물해방 활동가들이 ‘피고인’을 자처하는 이유

등록 2021-03-22 11:07수정 2021-03-22 11:28

[애니멀피플] 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 2회
2019년 12월25일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 쇼핑몰을 찾아 동물해방 메시지가 담긴 손팻말과 캐롤을 부르는 액션을 펼쳤고, 이 일로 지난 3월3일 법정에 서게 됐다. 그림 노예주 활동가
2019년 12월25일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 쇼핑몰을 찾아 동물해방 메시지가 담긴 손팻말과 캐롤을 부르는 액션을 펼쳤고, 이 일로 지난 3월3일 법정에 서게 됐다. 그림 노예주 활동가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동물해방 오는 그 날을 만들어가요”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 서울 영등포 한 대형 쇼핑몰. 30여 명의 동물해방 활동가들이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동물해방 메시지를 담아 개사한 캐롤을 불렀다. 다른 날도 아닌 크리스마스에 서로에게 사랑을 전하며 맛있게 식사 중인 사람들의 테이블 앞에 선 것이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지금 당장 동물해방’ 등 우리가 든 손팻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밥 먹을 때는 건드리는 게 아닌데, 선을 넘어도 제대로 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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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말고 재판을…“동물 현실 알릴 절호의 기회”

“여러분, 이런 기념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피가 넘쳐 흐릅니다. 그 피가 이곳에 흐른다면 누구도 그것이 폭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피를 보고 그 경험을 나누고, 이 기쁜 날에 이 즐거운 날에 사랑을 나누자고 말하고 싶어서 여기 왔습니다.” 디엑스이 은영 활동가의 당시 발언이다.

이날 30여 명의 동물해방 활동가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동물해방 메시지를 담아 개사한 캐롤을 불렀다.
이날 30여 명의 동물해방 활동가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동물해방 메시지를 담아 개사한 캐롤을 불렀다.

이날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며 크리스마스 직접행동에 나선 사람들은 누구일까. 참가 사연은 정말 다양했다. 매번 놀고먹기만 하던 크리스마스를 기독교인으로서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나온 회사원, 화려한 축제 뒤 짓밟히고 도살당한 동물들이 떠올라 뭐라도 해야겠다며 나온 학생, 누구보다 사랑이 철저히 차단된 동물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는 가사노동자도 있었다.

다들 평소 남에게 상처 준 것이 없나 고민하는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용기를 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가 동물에게 주는 상처, 아니 엄청난 폭력을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날 액션으로 은영 활동가와 나는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됐고 3월 3일 법정에 서게 됐다.

이날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며 크리스마스 직접행동에 나선 사람들은 다들 평소 남에게 상처 준 것이 없나 고민하는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날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며 크리스마스 직접행동에 나선 사람들은 다들 평소 남에게 상처 준 것이 없나 고민하는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애초 검찰은 각각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으나, 우리는 정식 재판을 요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법정에 선다는 것은 동물에 대한 폭력이 가볍게 무시되는 사회에서 동물의 현실을 만천하에 알릴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폭력이 기본값이 된 일상의 한가운데에 틈입해 균열을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전세계 동물권 활동가들의 풀뿌리 조직인 디엑스이(Direct Action Everywhere, DxE)의 활동 목표다. 식당 그리고 법정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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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우리가 넘은 선의 의미도 몰랐다

크리스마스 당일 액션 때도 우리의 ‘민폐’에 사람들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식당 안 시민들은 당황한 듯 우리를 쳐다보거나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예 얼굴을 숨기는 이도 있었다. 이들이 느낀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등장한 순간부터 접시 위 토막난 동물들의 몸이 스스로 폭력을 증언한 것이 아닐까.

온라인상의 반응도 뜨거웠다.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란 구호에 반응하는 댓글들은 특히 그동안 가려졌던 동물에 대한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동물을 잔혹하게 도살하거나 살처분하는 사진과 본인이 방금 먹은 고기 사진을 올리며 “나는 폭력이 너무 맛있다”고 조롱하는 이들이 대거 나타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악플들은 동물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인정하고 널리 알리고 있었다.

이날 재판에서 은영 활동가는 ‘우리는 왜 직접행동을 하는가’라는 변론을 펼쳤다. 그림 노예주 활동가
이날 재판에서 은영 활동가는 ‘우리는 왜 직접행동을 하는가’라는 변론을 펼쳤다. 그림 노예주 활동가

그러나 정작 검찰은 ‘우리가 넘은 선’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지난 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공소장에 ‘왜 고기를 먹느냐! 다 여러분의 반려동물이다’와 같은 우리가 외친 적 없는 황당한 말들을 범죄사실로 적어놓고 있었다.

심지어 재판 당일 검사가 제출한 증거 영상에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지나치게 허술했고 성의 없는 처사였다. 재판의 피고인인 활동가들이 직접 나서서 제대로 된 영상을 증거물로 제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판사가 검사에게 사실관계를 다시 조사할 것을 요구하며 재판은 4월로 연기됐다.

2019년 12월25일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 쇼핑몰을 찾아 동물해방 메시지가 담긴 손팻말과 캐롤을 부르는 액션을 펼쳤고, 이 일로 지난 3월3일 법정에 서게 됐다.
2019년 12월25일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 쇼핑몰을 찾아 동물해방 메시지가 담긴 손팻말과 캐롤을 부르는 액션을 펼쳤고, 이 일로 지난 3월3일 법정에 서게 됐다.

이날 은영 활동가는 ‘우리는 왜 직접행동을 하는가’라는 변론을 펼쳤다. “판사님, 현장에서의 비폭력 직접행동은 가려진 동물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동물이 체계적으로 수탈되는 것이 당연한 이 구조에서 영업장에 가해진 업무방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래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구조적으로 은폐된 동물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비하면 정말 찰나의 순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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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시라, 평범하고 소심한 동물의 변론을

다음 재판에서 우리는 동물들을 피 묻은 접시 위가 아닌 법정에 앉힐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기’가 아닌 피와 살을 가진 유한하고 취약한 생명들이다. 다른 일 때문이라면 법정에 선다는 일이 낯설고 두려울 것이다. 이번엔 다르다. 우리들은 평범하고 소심하지만 한 명의 ‘동물’로서 그 누구보다 간절하다.

4월 재판에서 나는 ‘왜 동물해방인가’를 주제로 변론을 할 생각이다. 동물을 대변하는 자리에 우리 사회는 마땅히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우리의 비폭력 직접행동에 함께 하고 싶다면 4월2일 11시 20분 서울남부지방법원 404호에서 열릴 동물들을 위한 재판에 인간 동물로서 연대 할 수 있다.

글·사진 섬나리 디엑스이·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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