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호랑나비의 곁으로 수컷 호랑나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몰려든다.
9월 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배초향이 만개할 무렵 더위가 누그러졌다. 경기도 광주시 이석리 마을은 검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사는 지인은 매년 집에 울타리 삼아 배초향을 심는다. 2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올해는 유난히 더 많은 배초향이 풍성하게 꽃을 피웠다.
배초향의 독특한 향은 향유, 꽃향유와 함께 짙은 향기를 내는 꿀풀과 자생식물이다. 오죽 향기가 진하면 ‘다른 풀꽃을 밀어내는 향기’란 이름을 얻었을까. 우리나라 산지나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관상용, 식용, 약용으로 고루 쓰이며 목욕탕의 향료로도 쓰인다. 방아풀이라고도 불리며 추어탕 등에 넣어 먹는다.
호랑나비 겹눈은 대단히 커서 머리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호랑나비는 화사한 봄날 처음 출현해 여름을 보내고, 이제 영글어가는 가을 햇살을 맞으며 찬란한 마지막 비행을 하고 있다. 울타리에 심어 놓은 배초향 꽃을 징검다리 삼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넉넉한 풍요로움과 여유를 만끽하며 파란 가을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 분홍빛 배초향은 달콤한 꿀물을 선사한다.
최고의 꿀을 찾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호랑나비. 팔랑거리며 나는 호랑나비는 눈치도 빠르고 잡기도 힘들다.
배초향 향기에 이끌렸지만, 호랑나비가 찾는 건 꿀뿐만이 아니다. 암컷 호랑나비가 날아오자 수컷 호랑나비가 반색하며 구애에 나선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사랑의 비행’이 시작된다. 수컷이 따라붙자 못 이기는 척 수컷을 유인하는 암컷의 몸짓이 펼쳐진다.
꿀이 많은 배초향에 몰려드는 호랑나비. 임도 보고 꿀도 딴다.
꽃에 앉은 암컷 호랑나비 한 마리에 여러 마리의 수컷 호랑나비가 달려드는 일이 다반사다. 수컷 호랑나비들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이 치열하다. 날개를 하염없이 나풀거리면서 구애하는데 힘찬 날갯짓이 암컷을 유혹하는 관건이다.
사실 호랑나비의 속셈은 따로 있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짝짓기다.
암컷 호랑나비의 곁으로 수컷 호랑나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몰려든다.
수컷 호랑나비들은 어느새 달콤한 꿀도 잊은 채 암컷 호랑나비의 곁을 맴돈다.
수컷 호랑나비가 구애춤을 추며 암컷 호랑나비를 유혹한다. 나비의 짝짓기는 시각과 후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정열적인 나비춤이 절정에 이를 때쯤 암컷 호랑나비는 하늘로 치솟는다. 이때 수컷 호랑나비들은 암컷을 따라 줄줄이 하늘 높이 올라간다. 사력을 다해 암컷을 따라가며 구애의 춤을 멈추지 않는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는다. 나비의 짝짓기는 여간해선 보기 어렵다.
암컷 호랑나비에게 향하는 수컷 호랑나비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암컷 호랑나비를 향해 다급히 날아드는 수컷 호랑나비.
수컷 호랑나비가 암컷 호랑나비 곁으로 다가섰다.
짝짓기를 위해 하늘 높이 올라가는 호랑나비. 짝짓기가 끝난 후 대부분의 수컷은 죽고 암컷은 몇 시간 안에 알을 낳는다.
배초향 울타리에는 아침 해가 뜰 무렵 가장 먼저 다양한 벌들이 부지런히 찾아오고 박각시나방도 슬그머니 나타난다. 호랑나비는 오전 9시께 서너 마리씩 보이다 11시께 80여 마리의 무리를 이루고 오후 1시께부터 호랑나비의 왕성한 활동이 시작된다. 지난해보다 많아진 배초향 때문인지 검단산에 호랑나비가 죄다 몰려든 것 같다.
호랑나비는 꿀을 찾는 동안은 짝짓기하지 않고 오후 2시께부터 경쟁하듯 짝을 찾는다. 그러다 오후 6시가 되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날개 무늬가 자연스레 숨겨지는 마른 나뭇잎이나 마른 가지 등이 있는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겨 다음날을 기약한다. 벌과 박각시나방은 오후 늦게까지 남아 활동한다.
몸에 꽃가루를 흠뻑 묻힌 제비나비도 함께한다.
호랑나비는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나비로 사랑받는 동시에 우리 문화 안에도 친숙하다. 농민들이 나비의 행동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기도 했다. 아침부터 텃밭에서 호랑나비가 춤을 추면 그날은 맑은 날이다. 비가 오기 전 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흐리면 감쪽같이 사라져 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기상예보관인 셈이다. 호랑나비의 털은 유난히 민감하여 기온, 습도, 기압 등을 정확히 감지한다.
호랑나비 수컷(앞)과 호랑나비 암컷(뒤). 날갯짓으로 소통한다.
호랑나비는 호랑나빗과 호랑나비속에 속하며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한다. 열대에는 살지 않고 온난한 기후를 좋아한다. 한국 전역에 분포하며 봄에는 산길을 따라 능선부로 올라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산지뿐만 아니라 숲 가장자리와 도시공원 꽃밭 등 다양한 곳에서 관찰된다. 나비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충의 수명은 2주 정도다. 호랑나비는 봄형과 여름형으로 나뉜다. 4~5월 봄에 태어난 봄형 호랑나비는 여름형보다 조금 작고 무늬가 선명하다. 여름형 호랑나비는 6~10월 사이에 태어나고 수컷이 암컷보다 앞날개 끝이 더 돌출되었다. 여름형 호랑나비 암컷은 수컷보다 날개의 노란빛이 더욱 선명하며 검은색 무늬는 수컷보다 연하다.
호랑나비는 포식자들이 맛이 없어 좋아하지 않는 다른 나비들의 색상과 무늬를 흉내 내며 환경에 적응한다. 애벌레는 새똥 흉내를 내고, 방해를 받으면 악취가 나는 물질을 방출한다. 귤나무, 탱자나무, 산초나무, 황벽나무를 먹고 자란다. 호랑나비 성충이 되고 나서는 엉겅퀴, 라일락, 누리장나무, 무궁화, 백일홍, 향유, 코스모스, 파리풀, 솔체꽃, 파 등 여러 꽃에서 꿀을 먹는다.
사냥에 나선 사마귀. 아무것도 모르는 호랑나비가 다가오고 있다.
대표적인 천적은 거미와 사마귀다. 거미는 호랑나비가 거미줄에 걸리면 소화액을 주입하여 체액을 빨아먹는다. 사마귀는 나비가 모이는 꽃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가 사냥한다.
호랑나비가 마주 보고 꿀을 먹고 있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가을은 바쁘기만 하다.
여름을 뒤로하고 가을을 따라가는 호랑나비는 분주하다. 서둘러 번식해야 다음 세대가 번데기 상태로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 비로소 봄을 만날 수 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