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가장 흔한 안줏거리는 군대 시절 이야기라죠? 그에 비해 여자들의 수다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3단 콤보 무용담’일 거예요. 10달 내내 입덧에 시달린 이야기, 난산으로 고생한 이야기, 아기를 힘겹게 낳고 나서도 모유 수유로 고생하거나 아기를 먹이고 재우느라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는 이야기 등 생명을 탄생시켜 키운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도 힘든 건지 이야기가 끊이질 않습니다.
만약 동물들이 이런 대화의 자리를 가진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질까요?
23개월간 새끼를 뱃속에 품는 코끼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임신하는 동물이다. 픽사베이닷컴
처음에 아프리카코끼리 엄마가 말합니다. “인간은 겨우 10달? 저는 23개월, 즉 2년 가까이 임신 중이었어요. 전 동물계에서 최고 임신기록 보유자지요. 코끼리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엄마를 따라 걸어 도망 다닐 수 있어야 해요. 왜냐면 사바나에는 사자 같은 무서운 포식자가 항상 노리고 있으니까요. 인간처럼 무력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초식동물들처럼 엄마 뱃속에서 몸과 다리를 튼튼하게 충분히 발달시켜서 태어나지요. 그중 우리 코끼리는 사회생활도 해야 해서 두뇌까지 충분히 발달시킨 후에 아기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요.”
오랑우탄 엄마가 나섭니다. “가장 긴 육아 기간은 어때요? 저는 일생 동안 단 5~6마리의 아기밖에 키우지 못했어요. 인도네시아 정글 숲은 너무 깊고 넓어 아기들이 많은 것을 알고 배워야 살아갈 수 있어요. 전 9년이나 아기를 업고 안고 다니며 선생님처럼 가르쳐서 독립시켰어요. 둥지와 잠자리 만드는 건축 수업, 넓은 정글 숲에서 어느 계절에 어떤 과일이 어떤 곳에서 열리는지를 모두 외우는 지리 교육도 해야 하고요. 개미와 흰개미 낚시 사냥법, 먹는 식물과 독성식물을 구별하는 약초식물학, 육아와 아기 돌보기 등 가정과 수업까지 정말 가르칠 것이 너무 많아요.”
범고래 엄마도 질 수 없습니다. “아~ 졸려. 난 우리 아기가 태어난 후 한 달 동안 단 한숨도 자지 않았어요. 상어와 다른 범고래 등 우리 아기를 위협하는 동물들이 천지에요. 계속해서 물속을 둥둥 헤엄치며 아기 주위를 지켜냈죠. 이제 아가가 커서 조금 잘 수 는 있지만, 앞으로도 수개월은 더 잠을 많이 줄여야 해요.”
이때 북극곰 엄마가 말합니다. “고작 한 달 가지고 뭘 그래요? 나는
넉 달 동안 굶으며 아기들에게 젖을 주었어요. 임신 전에 200㎏이나 찌워야 해서 몸매가 엉망 되었는데…. 휴! 아가들이 겨우 600g 몸무게밖에 되지 않아서 15㎏까지 4달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굴속에서 아기들을 키우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젠 너무 빼빼 말라버렸어요.”
범고래는 갓 태어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출산 후 한 달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때 양서류의 일종인 영원이 말을 보탭니다. “전 아기들에게 지난 수 십 일간 내 피부를 먹였어요. 아기들을 내 피부 위에 올려놓고 조그만 이빨로 피부를 물어뜯어 먹게 했죠. 피부를 3일에 한번 재생시켜서 다시 먹이고 재생하고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기들이 무사히 잘 커서 다행이에요.”
세상을 가장 오래 살아온 바다거북 엄마가 조심스레 말합니다. “제 이야기는 아닌데요. 좀 더 극단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들도 있대요. 여기 오지 못한 문어 엄마는요. 알을 낳고 수개월 동안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알을 지킨대요. 그러고 나면 엄마는 죽는다고 하네요. 들어보니 심해의 어떤 문어 엄마는 그렇게 4~5년을 버텼다지 뭐예요? 유럽의 어둡고 습한 동굴에 산다는 아모로비우스거미의 엄마는 새끼에게 자기 몸은 먹이로 줘 버렸대요. 거미줄을 쳐서 도망가거나 숨을 수도 있는데, 일부러 자기 몸쪽으로 유도해서 키웠다네요. 그렇게 키워서 그런지 새끼거미들이 그렇게 서로 돕고 산대요. 신기하게도 다른 거미나 곤충들과 다르게 형제들끼리 협동하여 사냥하면서 잘 컸대요.”
동물 엄마들의 수다가 조용해집니다. 왠지 마음이 아프네요. 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빠들도 이 수다 배틀에 참여합니다. “엄마들만 힘든 건 아니에요. 우리 해마 아빠들은 마치 엄마의 아기집과 같은 배주머니에 알을 넣고 영양분과 보호제를 주어가며 알을 키워 출산도 했어요.”
이미 유명한 황제펭귄 아빠도 한마디 합니다. “제가 사는 남극은 기온이 영하 45도까지 내려가요. 바람은 얼마나 세게 부는지 몰라요. 발 위에 알을 올려놓은 채
넉 달 동안 1분에 10㎝씩 바람 부는 방향으로 움직이지요. 이는 우리 황제펭귄들의 위대한 지혜랍니다. 이렇게 움직이면 안쪽에 있는 아빠와 바깥쪽 아빠가 바뀌어 결국 모두가 따뜻하게 온기를 나눌 수 있지요. 이렇게 알을 품을 때 잠시라도 알을 놓친다면 알은 바로 깨지거나 얼어버립니다. 정말 조심조심 움직여야 합니다.”
이 무용담 배틀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그 어려운 출산과 양육의 고개고개를 넘어온 동물 엄마·아빠들과 그 아기가 참 대단해 보이고, 앞일을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서로를 알면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돈독해집니다. 소개하지 못한 동물들도 그렇답니다. 얼마나 고개 고개를 넘어 그 생명을 그 종을 유지해 왔을까요? 이렇게 소중한 생명을 그들의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모두가 서로 보호해주면 생명이 넘치는 세상이 오겠지요.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가 ‘내 이웃의 동물들’과 더불어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마승애의 동물학교’는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가장 바람직한 관계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고, 우리의 행동을 선택하는 방법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 대한수의사회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고민하여 만든 <동물과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동물사랑 교과서의 주제와 흐름을 참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