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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날개 잃은 황조롱이는 왜 먹이를 거부했을까

등록 2017-09-29 08:00수정 2017-10-10 19:31

[애니멀피플] 마승애의 내 이웃의 동물들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만난 황조롱이
도시의 유리창에 눈이 파열됐지만
야생의 작은 몸짓 잊을 수 없어
야생의 새들은 인간과 공존하며 유리창에 부딪히는 사고를 자주 당한다. 최태영 국립생태원 책임연구원 제공
야생의 새들은 인간과 공존하며 유리창에 부딪히는 사고를 자주 당한다. 최태영 국립생태원 책임연구원 제공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일할 때, 날개를 심하게 다친 황조롱이를 만난 적이 있다. 인간의 손에 의해 구조 받은 야생 동물들은 어떤 심정일까. 그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황조롱이의 시점에서 쓴 짧은 우화다.

“삑삑삑삑, 나는 새끼들에게 돌아가야 해!“

“쾅!” 무언가 부서질 듯 큰 소리와 함께 나는 머리와 눈, 그리고 한쪽 날개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동시에 내 몸은 아래로 한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점차 희미해졌다. ‘아! 어떻게 된 걸까? 분명 쥐를 쫓아 날아가고 있었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겨우 정신을 차린 후,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인간 아이들 몇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인간들은 위험해!’ 그 옛날 숲에서 내게 돌을 던지며 위협하던 그 인간들은 아닐까? 나는 도망치기 위해 날개를 파닥거렸다. 순간, 날개가 부러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물론 날개는 전혀 움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몸이 한편으로 기울어졌다. 제대로 서있기 조차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야가 흐릿한 게 한쪽 눈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아이들 틈에서 커다란 인간 하나가 다가오더니 나에게 그물을 씌웠다. 사방이 깜깜해지고 나는 또다시 의식을 잃어갔다.

‘힘을 내어 여기서 나가야 해. 배고픈 새끼들이 기다릴텐데. 아아, 그 때 다른 새들처럼 멀리멀리 떠날 걸, 왜 여기 이곳에 남아 있었을까?’

우리 부부가 만난 건 5년 전 울창한 숲속이었다. 우리는 버려진 까치둥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매년 새끼들을 함께 정성껏 키워냈다. 아기들도 잘 자라고 우리는 비교적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해 가을, 커다란 소리와 함께 둥지가 있던 나무가 쓰러져버렸다. 이어 숲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깎아지른 듯한 회색빛의 바위절벽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잿빛의 네모반듯한 절벽에는 층마다 인간들이 들어와 살았다.

집을 잃은 동물들은 대부분 죽거나 떠났다. 둥지를 잃은 우리부부는 주변 숲을 전전하다가 적당한 새 터전을 찾지 못하고, 올봄엔 결국 회색바위 절벽 중 한 곳에 둥지를 틀 수 밖에 없었다. 4개의 알을 낳고 품어 부화시켰고 새끼들은 건강히 잘 자랐다.

하늘을 날고 있는 황조롱이. 최태영 국립생태원 책임연구원 제공
하늘을 날고 있는 황조롱이. 최태영 국립생태원 책임연구원 제공

좋은 점 한 가지도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자 우리를 위협할만한 큰 맹금류나 구렁이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회색바위 절벽 사이사이에 생쥐와 같은 작은 먹잇감들을 이따금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도시란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 갈 수 있었다.

먹보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우리 부부는 매일 열심히 사냥하러 날아다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찾기 힘든 큰 쥐가 나타나서 쫓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 아기들이 배부르게 먹을 만한 큰 쥐였다. ‘분명히 저쪽 하늘로 날아가 쥐를 잡으려 했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상자 뚜껑이 열리며 인간의 손이 나를 잡아 올렸다. 이 때가 기회였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인간을 부리로 쪼았고 , 놀란 인간이 비켜서자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햇다. 하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사방이 막혀있어 나갈 곳이 없었다. 똑바로 서서 그 인간을 노려보며 절망적으로 외쳤다. “삐삐삐삐! 나는 돌아가야 해! 내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내가 안가면 배고파 죽을 수도 있단 말이야! 내가 꼭 가야만 해! 삑삑삑삑!”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인간의 손에 붙들렸고, 인간은 커다란 천으로 나를 덮어버리고는 뾰족한 침으로 날갯죽지 아래를 사정없이 찔렀다. 나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나의 한쪽 날개가 보이지 않았다. ‘아아, 이럴 수가! 인간들이 나의 날개를 빼앗아 갔단 말인가?’나는 제대로 일어설 수 없어 빙글빙글 돌았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날개가 없다. 내 날개가 없어. 그럼 날 수 없다는 것인가? 사냥은? 창공위에서 정지비행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50m 하늘 위에서도 쥐오줌을 찾아낼 수 있는 나인데…. 아니, 이제 둥지로 돌아 갈수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좋지? 새끼들이 나만 기다리고 있는데….’

황조롱이와의 조우를 기억하며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근무하던 시절 황조롱이 수컷이 한쪽 눈은 파열되고 날개의 상완골이 완전히 부러진 채 들어 왔다. 새들은 유리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도 도시의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눈이 파열된 후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날개가 부러진 것으로 보였다. 심하게 조직이 썩고 상해 부득이 우측 날개를 절단하는 수술을 해야 했었다.

수술 전, 워낙 강력히 저항하며 부리로 쪼아 잠시 놓쳤었다. 도망가도 갈 곳이 없는 구조센터 처치실 안에서 그 눈에 서린 한기를 느꼈다. 무서웠다. 고작해야 200g 될 만한 황조롱이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잠시 멈칫 했었다. 이후 호랑이, 사자 등 무시무시한 다른 야생동물을 아무리 만나 봐도 난 그때 그 야생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결국 그 황조롱이는 수술 후 회복될 때 인간이 주는 먹이를 거부하고 죽어버렸다. 그에겐 이 따위 동정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하천 근처 아파트 상공에서 황조롱이 한 마리가 정지 비행하는 것을 보았다. 마음속으로 말했다. ‘제발 유리를 조심해. 너희 친구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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