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처음 호랑이를 마취했을 때, 수술을 집도하는 선배 수의사 곁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호랑이가 잘 살아있는지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며 혹시라도 호랑이가 마취사고라도 날까 싶어 잠시라도 호흡이 멈추는 것 같으면 청진기를 들어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쿵쿵쿵쿵’ 분당 60~80회 정도의 호랑이의 심박동을 듣고 나면 ‘다행히 괜찮구나’ 하며 가슴을 내려놓곤 했다.
심장은 예로부터 생명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심장이 뛴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로 현대의학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인정하는 생명의 신호이다.
사람의 심장은 성인의 경우 약 300g 정도의 무게이다. 고작 자신의 주먹보다 약간 큰 크기로 전체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심장이 폐와 장기에서 가져온 산소와 영양분을 혈액에 실어 온몸으로 펌프질해 쏘아 보낸다. 혈액은 혈관을 따라 다니는데, 우리 몸속의 혈관의 길이를 모두 모으면 지구 두 바퀴 반이나 된다고 한다. 작은 심장이 지구 두 바퀴 반 길이로 혈액을 보내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심장이 생명 유지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아는 방법이 있다. 바로 심장박동수(심박수)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심박수는 1분마다 약 60~70회이다. 동물들은 모두 각자의 생겨난 모습과 사는 환경에 맞추어 심박수가 차이 나는데, 평균적으로 고래는 분당 6번, 코끼리는 30번, 말은 38번, 개는 85번, 고양이는 130번, 쥐는 420번 뛴다.
이렇게 심박수는 동물마다 매우 다르지만, 몸무게와 관련된 규칙을 가지고 있다. 포유류, 조류 등 항온동물(온도가 일정한 동물) 중에는 큰 동물보다 작은 동물이 더 자주 심장이 뛴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20g인 카나리아는 분당 1000번, 몸무게가 5톤인 코끼리는 분당 30번 가량 심박수를 기록한다. 가장 빠른 심박 수를 기록한 동물은 벌새인데 초당 80회의 급격한 날갯짓을 할 때, 심장이 자그마치 1260번이나 뛴다고 한다. 벌새는 신기하게도 잘 때 심박수를 50번으로 낮출 수도 있다. 보통의 동물들이 흥분하거나 운동할 때 조금 더 심장이 빨리 뛰고, 쉬거나 잘 때 더 느리게 뛰는 등 어느 정도 일정한 편인데, 심박수를 크게 조절할 수 있는 동물도 있는 것이다.
벌새처럼 심박수를 크게 조절하는 다른 동물들은 없을까. 치타는 달릴 때 분당 120회에서 250회까지 심박수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덕분에 에너지가 다리에 공급되어 세계 최고의 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치타의 심장은 200~300미터를 뛸 정도만 버티어 낼 수 있다. ‘바다소’라고도 불리는 매너티도 심박수 조절이 가능하다. 매너티는 물풀을 뜯어 먹고 산다. 그래서, 물속에서 아주 긴 시간 동안 잠수하며 생활하는데, 매너티가 오래 잠수할 때는 심박수가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심장에 쓰이는 에너지를 줄여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곰도 심박수가 크게 줄어들 때가 있다. 바로 겨울철 동면할 때다. 이때는 평소 40회 정도 뛰따가 8번으로 줄인다.
연구에 따르면 동물별로 다른 심박수는 수명과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생애 전 기간 동안 뛴 총심박수가 많을수록 수명이 짧다. 활발한 에너지 대사로 인해 산화가 많이 되어 생명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즉, 수명과 심박수는 반비례, 수명이 길수록 천천히 뛰고 짧을수록 빨리 뛴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동물들 중에는 아주 특별한 심장을 가진 동물들이 있다. 대왕고래의 심장은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 중 가장 크다. 소형차 크기로 약 430kg의 무게가 나간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심장답게 대왕고래심장의 대동맥은 사람의 아이가 기어지나갈 정도로 크고 두께도 웬만한 스마트폰의 길이이다.
기린도 몸에 비해 심장이 큰 편인데 심장의 무게가 약 12kg이나 나간다. 큰 심장 덕분에 몸은 물론이고 2m위의 기다란 목을 지나 머리꼭대기 까지 충분한 양의 피를 보낼 수가 있다.
악어의 심장은 상황에 따라 피의 흐름을 조절 할 수 있다. 물속에 있을 때 악어는 산소가 많은 피를 머리와 주요기관으로 보낸다. 그리고, 산소가 줄어든 피를 나머지 중요하지 않은 기관으로 보낸다. 폐쪽으로 가는 판막을 막아서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아낀 덕분에 악어는 물속에서 한 시간 이상 버틸 수 있다.
문어는 3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아가미심장은 아가미 쪽으로 피를 순환시키고 가운데의 체심장이 온몸에 피를 돌린다. 체심장은 유영할 때는 멈추었다가 기어서 돌아다닐 때 다시 뛴다. 문어의 피는 마치 외계인처럼 파란색인데 이는 피속에 사람의 헤모글로빈(철성분)대신 헤모시아닌(구리성분)이 들어 있어서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낮은 혈압을 견뎌내기 위한 문어의 자연적응 덕분이다.
보통 동물들의 심장은 한번 손상되면 되돌리기가 어려운데, 얼룩말물고기는 심장 근육이 20%이상 손상되어도 2달 만에 재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 비단뱀은 밥을 먹고 나면 심장 크기가 배고플 때보다 두 배 크기로 불어난다.
이렇게 각각 특별하고 신기한 심장들은 모두 다 다르지만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각기 제 역할을 하면서 모두 다 쉼없이 뛴다. 지금 나의 심장소리와 가까이 있는 동물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어보자. 모든 동물의 심장은 우리에게 쉬지 않고 이야기 한다. “난 살아 있어요!”라고.
글·사진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