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는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부끄럼이 많은 동물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후다다닥~! 학교 갔던 아이가 달려 들어왔다.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 마을 한복판에 멧돼지가 나타났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걸어오는데 눈이 딱 마주쳤어!” “아이쿠! 세상에나! 넌 괜찮은 거지? 무슨 일은 없었고?”
아이는 꽤나 놀라고 무서웠던 듯 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다치거나 넘어진 흔적이 없는 것이 다행히 사고가 나진 않은 모양이다. “어떤 아저씨가 차로 막아줘서 우리는 집으로 뛰어들어왔어! 근데, 그 멧돼지 아직 마을을 서성이고 있는 것 같아!” “그래? 그것 참 큰일이네.”
멧돼지는 덩치가 크고 성질이 예민하며 두려움이 많다. 자칫 사람들과 마주친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멧돼지가 마을 아래까지 왜 내려온 거지?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위험하다고 엽사를 부를 수도 있는데…. 어쩌면 좋을까?”
아무래도 멧돼지가 걱정이 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급히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곳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자동차에 오르면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봄, 아이들은 학교 특별수업으로 뒷산 습지에 논농사를 지었다. 논에 돌을 고르고 허리 굽혀 모내기를 했다. 수많은 벌레에 물려가며, 가물 때는 물을 대어가며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었다. 마침내, 고개를 숙인 황금빛 벼가 여물어가자 추수를 준비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지은 쌀로 떡을 해먹을 생각에 그동안의 고생도 잊고 신나 있었다.
그런데 추수하기 며칠 전, 논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볏단들이 모두 넘어져 있었다. 게다가 잘 익은 알곡들을 누군가 죄다 뜯어 먹었다. 근 1년간의 고생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절망하며 도대체 누구 짓인지 화를 내던 그 순간, 발자국을 발견했다! 고라니라고 하기엔 너무 큰, 바로 멧돼지 발자국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까지 분개했고 그 마음을 풀어주느라 선생님과 부모들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니 동물과도 나누어 먹어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설득해봤지만, 함께 속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땅에 남은 멧돼지 발자국.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화가 나고 겁에 질린 사람들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산으로 빨리 돌려보내야 하는데… 그런 걱정을 하며, 내려가 보니 멧돼지는 아직 마을 입구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돌려보내려고 자동차의 경적을 울려봤지만, 멧돼지가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곧 몰려올 것 같았다. 다급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밭을 정리하던 송이네(가명)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 송이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사셔서 동물을 잘 아셨다. 옛날엔 여우 우는 소리도 많이 나고 산토끼도 많았다면서 재미있는 동물 이야기도 가끔 들려주시곤 하는 분이다.
할아버지는 가만히 내 옆으로 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조용히 옆으로 비켜서서 차 시동을 끄고 기다려봐. 멧돼지는 부끄러움이 많은 동물이지. 옛날엔 사람 사는 데서 보기 힘든 동물이었어. 기다리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산속으로 스스로 갈 거야.”
동물을 잘 아는 할아버지를 믿고 잠시 조용히 기다려보았다. 한참을 우왕좌왕하던 멧돼지는 조용해지자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잠시 후 길이 아닐 것 같았던 깎아지른 산비탈로 훌쩍 뛰어들어가 버렸다. 안정이 되자 제 길을 스스로 찾은 것이었다.
“할아버지 감사해요. 하마터면 제가 일을 그르칠 뻔 했네요.” “흠, 그래 다행히 제집을 찾아갔구먼. 그런데 참 걱정이네. 마을 쪽에 멧돼지가 나오다니, 산을 계속 깎아대더니 그것 때문에 그런가. 쯧쯧쯧!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말야.” “그러게요. 제가 뉴스에서 봤는데, 어떤 마을에서는 멧돼지들이 살 곳을 잃고 먹이가 부족해 자꾸 내려온다고 판단했대요. 그래서 멧돼지에서 먹이주기를 시작했다나 봐요. 우리 마을도 그런 거 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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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는 원래 산속 깊은 곳에 주로 삽니다. 자연 서식지가 많이 파괴되고 먹이가 부족하여 최근 민가로 많이 내려오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갈등이 점차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멧돼지와의 공존을 생각하는 방법을 시도한 곳도 있습니다. 바로 충청북도 옥천군의 멧돼지 먹이주기 시범사업입니다. 멧돼지가 민가 근처로 오지 않도록 산에 미리 먹이를 주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가시적인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단 한 번의 시도가 아닌 여러 방법으로 연구해 본다면, 언젠가 공존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해 봅니다.
글 마승애 동물행복연구소 공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