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코로나19 시대, 눈여겨 볼 동물들
먹이 환경이 만들어 낸 ‘사회적 행동’의 진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이들 여기 있다
먹이 환경이 만들어 낸 ‘사회적 행동’의 진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이들 여기 있다
오랑우탄은 수마트라오랑우탄, 보르네오오랑우탄 등 두 종이 있었는데, 최근 제3의 종인 타피눌리오랑우탄이 발견됐습니다. 멕시메 앨리아가 제공
1. 우리가 오랑우탄이 됐다면? 영국 방송 ‘비비시’의 니키 왈드론 피디는 보르네오에서 제3의 오랑우탄 종인 ‘타피눌리오랑우탄’을 찾았습니다. 몇 주 동안의 추적과 기다림 끝에 어미와 딸을 발견했다고 해요. 카메라를 들었는데, 아주 어둡고 나뭇잎으로 가득 쌓여서 담아지질 않았대요. 오랑우탄은 40m나 되는 나무 위에 있었거든요. 왈드론은 22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상어도 찍어보고 대형 고양잇과 동물(시베리아호랑이나 설표 등)도 찍어봤는데, 이번이 가장 찍기 어려웠다”고 푸념했습니다. 다른 유인원과 오랑우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인간을 포함한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는 무리 생활을 하지만, 오랑우탄은 무리를 이루지 않고 단독자로 살아갑니다. 웬만하면 나무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도 이 동물의 특징입니다. 오랑우탄은 기본적으로 암컷과 수컷이 따로 살고, 교미할 때만 짧게 만납니다. 새끼를 4~5년 기르면 독립을 하기 때문에 어미는 다시 혼자가 되지요. 보르네오에서 오랑우탄을 관찰한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비루테 갈디카스는 독립 직전의 청소년 오랑우탄들이 서로의 둥지를 놀러 오는 장면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책 ‘에덴의 벌거숭이들’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왜 오랑우탄은 혼자 살까요? 먹이 환경에 달려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먹이가 풍부하면 다른 개체와 돕거나 싸우면서 먹이를 구하고 나누지만, 먹이가 어느 지점 이하로 떨어진 환경에서는 사회적 활동은 사라지고 각자도생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를 둬야 하겠지만, 음… 먹을 것은 나눠 먹도록 합시다.
히말라야 산맥과 힌두쿠시 산맥의 고지대에 사는 설표입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2. 설표를 만나려면? 히말라야 산맥의 외진 산정에 사는 설표는 아주 보기 힘듭니다. 서식지의 평균 고도는 3000~4000m, 절벽이나 낭떠러지에 자리 잡습니다. 주로 해질녘이나 해뜰녘에 움직여서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이때를 노립니다. 남의 눈을 피해 다니는 설표가 그래도 카메라에 ‘포착’되는 이유는 고양잇과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고양잇과 동물은 기본적으로 영역 동물입니다. 자기의 영역을 만들어두고 침입자를 감시하니까(길고양이들이 각자 자기 구역이 있는 걸 떠올려보세요), 적당한 위치에 매복하고 기다리면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설표의 서식권역은 수십~수백㎢에 이릅니다. 이렇게 영역이 넓은 이유는 설표 그 자체의 생태적 특성이기도 하지만, 개체 수가 4000~6000마리로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새끼는 어미와 함께 살다가 두 살 때 독립합니다. 그때부터 외로운 생활이 시작됩니다.
북극해의 끝없는 얼음바다. 거기서 북극곰과 북극곰이 마주칠 확률은 어느 정도 될까요? 남종영 기자
3. 동물원에 사는 북극곰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10여년 전 저도 북극곰을 찾아 헤맨 적이 있었습니다. 사나흘의 잠복 끝에 북극곰과 마주쳤습니다. 혼자였습니다. 덩치를 보아 북극곰은 갓 독립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지난해 죽은 고래의 사체 냄새를 맡고 먼바다에서 헤엄쳐 왔지요. 북극곰은 새끼를 돌볼 때를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혼자 다닙니다. 혼자 걷고 혼자 수영하고 혼자 사냥합니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이 자원이 희소한 북극의 환경에서 이런 행동이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죠. 그럼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 경쟁에서 북극곰을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북극해가 넓디넓다는 것입니다.(북극곰 “이 봐, 당신들이 사는 보르네오 섬과 히말라야 산맥이 어떻게 북극해보다 클 수가 있냐고?”) 게다가 기후변화와 사냥으로 북극곰은 2만~2만5000마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북극곰이 북극의 얼음 바다를 혼자 걷다 동료 북극곰을 만나면, 우리가 사막에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와, 반갑다” 할까요? 아마도 조심스럽게 피해갈 겁니다. 반면, 동물원에서는 북극곰 여러 마리가 ‘어쩔 수 없이’ 모여 삽니다. 두 과학자가 미국 필라델피아동물원의 북극곰 두 마리를 106시간 관찰한 결과를 2006년 학술지 ‘응용동물복지과학’에 실었습니다. 북극곰은 서로 거리를 좁히려는 행동보다 더 떨어지려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같은 구역에 머물렀던 시간은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가까이 오면, 거리를 두고 떨어졌습니다. 동물원은 북극곰에게 살기 적합하지 않습니다. 북극곰이야말로 ‘사회적 거리’를 두는 관습이 유전자에 박혀 있으니까요.
52Hz 고래는 어떤 존재일까요? 사진은 2003년에야 과학적으로 보고, 확인된 ‘오무라고래’입니다. 위키미디어코먼즈 제공
4. 내가 바로 사회적 거리 두기 챔피언…52Hz 고래 해양포유류학계의 오랜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바로 수수께끼의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내는 ‘52Hz 고래’입니다. 1980년대 미소 냉전이 한창일 때, 미국의 잠수함 탐지체계에 처음 포착된 이 소리는 잠수함도, 대왕고래도, 그 어떤 고래의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미국 캘리포니아 먼바다와 알래스카 앞바다를 왔다갔다 하는 것만 알 수 있었습니다. 2004년 빌 왓킨스 박사는 ‘북태평양 52Hz 고래 소리의 12년간의 추적’이라는 논문을 냅니다. “우리는 이것이 어떤 종인지 모른다… 이 드넓은 바다에서 딱 한 마리만 이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12년간의 모니터링을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이 소리는 딱 한 마리에서 나는 소리다.” 52Hz 고래는 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관련 기사 ‘52Hz…52Hz…응답 없는 고래의 노래여’) 어떤 이들은 고래를 멸종 직전으로 몰아넣은 19~20세기의 포경 열풍으로, 우리가 몰랐던 어떤 고래 종이 다 죽고, 이 한 마리만 남은 것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52Hz 고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동물일 겁니다. 사회적 거리를 둘 수조차 없는…. _______
동물 상식 하나! 누가 더 사회적일까? 동물학자들은 동물의 사회성을 결속력에 따라 분류하는데, 그 강도에 따라 아사회성(subsociality), 유사사회성(parasociality), 진사회성(eusociality)이 있습니다. 아사회성은 어미가 새끼를 돌볼 때는 같이 있지만, 독립 후 떨어지는 종입니다. 유사사회성은 같은 세대들이 모여 둥지를 같이 만들고 공동육아를 하는 동물입니다. 진사회성은 사회성 단계의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개미나 벌이 해당합니다. 엄격한 노동 분담과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를 이룹니다. 오랑우탄, 설표, 북극곰은 사회성의 낮은 단계인 ‘아사회성’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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