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대형 맹금류인 흰죽지수리(오른쪽)와 흰꼬리수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공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일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에서 흰죽지수리를 만났다. 얼굴 보기 참 힘든 새다. 20여 일 동안 생태를 관찰하였다.
강화도 주변의 섬은 크게 교동도, 석모도, 불음도로 나눌 수 있다. 교동도에는 드넓은 농경지가 있어 철새가 많이 찾는다.
한강과 예성강 등 여러 하천에서 밀려 내려오는 많은 토사와 거센 조수에 의한 퇴적작용으로 연안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특히 예성강 서쪽에 북한의 연백평야가 자리 잡고 있어 철새들이 5㎞ 거리의 남북한을 자유롭게 오간다.
이 철새의 낙원에는 겨울이면 쇠기러기가 들판을 뒤덮는다. 맹금류도 이들을 따라서 온다.
성조가 되려면 2년쯤 더 자라야 하는 어린 개체이다. 흰죽지수리는 다 자라면 몸길이 90㎝, 날개 편 길이 2.2m에 이르는 대형 맹금류이다.
교동도는 적당히 큰 산과 숲, 저수지 그리고 평야가 개방적이고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특히 무학리 난정 저수지 앞 드넓은 평야는 흰죽지수리가 선호하는 장소다.
오전 7시 30분 동틀 무렵이면 쇠기러기가 먼저 무리를 지어 농경지를 찾는다. 흰죽지수리는 이때 병들거나 상처를 입은 또는 허약한 새를 구분하여 사냥 표적으로 삼는다.
흰죽지수리는 미리 정해둔 횃대나 동선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가며 오전에 빈번하게 활동한다. 꼭 필요한 활동만 하기 때문에 온종일 기다려도 관찰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신중하게 사냥한다는 의미이다. 사냥터 사방 2㎞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린 흰죽지수리는 어린 흰꼬리수리와 함께 다니면 분간하기가 쉽지 않고 얼핏 큰말똥가리가 흰죽지수리로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흰죽지수리는 앉을 때 종종 올빼미처럼 직립 자세를 한다. 사람 앞에서 크게 경계하지 않고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야산의 나무 꼭대기는 흰죽지수리가 몸을 숨기고 은밀하게 사냥감을 살피는 은신처이자 잠자리다.
농경지의 전봇대는 사냥감을 찾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흰죽지수리는 사냥감을 살필 때 드러난 낮은 봉우리, 전봇대, 바위, 건초 더미에 앉는다. 그 외에는 수목이 우거진 높은 나무 꼭대기에 앉아 휴식하거나 깃털 손질을 하고 사냥 준비를 하며 사냥 장소를 살핀다.
이 맹금류의 주요 사냥 대상은 작은 포유동물이다. 그러나 월동지인 교동도에서는 쇠기러기를 사냥한다. 사냥할 먹잇감을 발견하면 몸을 굽신거리고 땅으로 맹렬히 곤두박질치며 사냥감을 잡는다.
어떤 먹이는 걸어서 포획하는 경우도 있으며 땅다람쥐 등의 굴 입구에서 기다리다 사냥을 하기도 한다. 하루 평균 먹이 섭취량은 540g으로 알려져 있다.
1㎞ 이상의 높은 하늘에서 흰죽지수리가 하늘을 맴돈다. 별안간 급강하한다. 놀란 천여 마리의 쇠기러기 무리가 일제히 떠오른다. 흰죽지수리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쇠기러기를 순식간에 낚아채 논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대형 수리가 육중한 몸으로 하늘에서 사냥감 쇠기러기를 낚아채는 모습은 처음 본다. 비행 모습이 스텔스 전투기를 닮았다. 하늘과 땅 그리고 물까지 지배하는 뛰어난 사냥술을 자랑한다.
날개를 접고 쏜살같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전투기 같다.
흰죽지수리가 사냥하고 내려앉은 곳으로 갔다. 흰죽지수리가 사냥한 먹잇감을 독수리와 흰꼬리수리가 곁에서 노리며 쟁탈전이 벌어졌다.
힘과 서열로 결정되는 먹이 쟁탈전은 필사적이다. 물론 사냥을 한 뒤 몰래 숨어 먹기도 한다. 다부진 몸매와 대담한 성격의 흰죽지수리는 흰꼬리수리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흰죽지수리가 사냥한 쇠기러기를 움켜쥐고 주변을 살핀다.
독수리의 몸집에 밀려날 뿐이다. 그러나 먹이를 지키려는 어린 흰죽지수리의 모습은 용맹스럽고 비범하다. 먹이 쟁탈전 판이 지저분해지면 흰죽지수리는 점잖게 물러선다.
사체가 있거나 사냥을 할 경우 혼자서 먹기 힘들다. 다른 맹금류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훤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싸움은 불가피하다.
갑자기 흰꼬리수리가 달려들지만 큼직한 쇠기러기를 움켜쥐고 물러설 흰죽지수리가 아니다.
사냥감을 내려놓고 먹이를 빼앗으려는 흰꼬리수리에 맞서는 흰죽지수리.
독수리도 나타났다. 용맹스럽게 맞서는 흰죽지수리.
교동도 월동지에서는 전망 좋은 야산에 맹금류들이 각자의 지정석을 가지고 있다. 종종 영역 싸움이 일어나는데 흰죽지수리 혼자서 대여섯 마리의 흰꼬리수리를 상대하려니 신경이 쓰인다.
자기 지정석 근처에 오는 흰꼬리수리에게 굵고 긴 목을 내밀며 ‘웍, 웍, 웍’ 소리 내어 경고를 보낸다. 그 와중에 터줏대감인 까치와 까마귀마저 텃세를 부린다.
먹이 쟁탈전 터가 난장판이 되면 흰죽지수리는 자리를 뜬다.
흰죽지수리는 나무 위에서 뛰어내릴 때 스키 점프 선수가 활공하는 모양이다. 하강한 다음 날개를 저어 양 날개를 수평으로 펼친 채 하늘로 솟아오른다. 그래서인지 제일 높은 나뭇가지를 차지한다.
뛰어난 비행술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흰죽지수리는 다른 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목이 굵고 길다. 머리는 크고 길쭉한 꼬리 끝은 모난 형이다.
다리는 굵고 단단하며 발목까지 깃털로 덮여 있어 묵직해 보인다. 발이 튼튼하고 몸 전체가 굳세다. 비행하는 모습을 보면 돌출한 목과 큰 머리 긴 날개가 다른 맹금류들과 비교할 때 무겁게 느껴지지만 날개를 강력한 힘으로 조절하여 평평하게 펴고 날아오른다. 활공하는 동안 가속하면서 날개를 뒤로 젖힐 수도 있다. 대형 수리 답지 않게 매가 비행하듯이 멋진 비행술이 특징이다.
공중전을 벌이는 흰죽지수리(오른쪽)와 흰꼬리수리. 둘 다 최상위 포식자여서 먹이와 영역을 놓고 다툰다.
먹이 쟁탈전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다.
흰죽지수리의 성조 깃털은 대체로 흑갈색이지만 머리와 후두부 목 부분에 갈색과 노란색이 황금빛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양 날갯죽지에 난 하얀 반점이 특징이다. 어린 흰죽지수리는 대부분 옅은 갈색 반점이 가슴과 배에 있고 날개 덮깃에 밝은 갈색 반점이 많다. 다리 깃털은 황토색이다.
성조의 몸길이는 68~90㎝이고 날개 길이는 1.76~2.2m로 암컷이 최대 10% 정도 더 크며 체중도 40% 정도 더 무겁다. 평균 무게는 수컷 2.62㎏, 암컷 3.9㎏이다.
성조 깃털은 5~6살이 되면 완성되지만 4살이면 번식할 수 있다. 흰죽지수리의 둥지는 평균 가로 1.2~1.5m, 세로 60~70㎝ 크기로 나뭇가지 풀 털 등 다양한 재료가 쓰인다.
휴식과 다음 사냥을 위해 숲으로 돌아오는 흰죽지수리.
2일 또는 그 이상의 간격으로 2∼3개의 알을 낳는다. 흰죽지수리의 알은 전체적으로 탁한 흰색이며 회색, 청록색 또는 가끔 갈색 반점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평균 알 크기는 73.3㎜×56.5㎜이며 알 무게는 136.8g이다. 43일의 알을 품는 기간을 거쳐 생후 14일이 되면 깃털이 나기 시작하며 55일에 깃털이 다 자라고 첫 비행은 60일 후에 한다. 암컷과 수컷이 함께 먹이를 잡아 키운다.
흰죽지수리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며, 1994년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 자료 목록에 취약종으로 분류된 국제 보호조다.
강력한 발톱과 예리한 눈, 강한 힘을 가져 서양에서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영어 이름은 ‘황제 수리’(Imperial Eagle)이다.
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동아시아까지 광범위하게 번식하며 아프리카 북동부, 중동, 남부 및 동아시아에서 겨울을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강 하구, 파주 대성동, 화성 화옹호, 시흥 시화호, 강화 교동도, 강원도 철원, 낙동강, 주남저수지, 해남, 천수만 등에서 관찰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