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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 내면 13만원 돌려받는 기부…내 고향 답례품은 뭘까?

등록 2022-12-29 07:00수정 2022-12-30 11:19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어느 해보다 분주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지방 재정에 활력소가 될 ‘고향사랑 기부제’ 시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례를 마련하고, 기부를 유인할 답례품을 정한 뒤 일찌감치 홍보에 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조례 제정이 늦어지거나 답례품 선정에 애를 먹는 곳도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제’를 본뜬 고향사랑 기부제는 세액공제·답례품 등의 혜택을 내걸고, 주소지가 아닌 곳의 지방자치단체에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는 제도다. 중앙정부에만 손을 벌려온 자치단체들은 고향사랑 기부제가 빈 곳간을 채우고, 지역을 회생시키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자체일수록 기부 유치에 적극적이다.

충북 증평군이 지난달 17일 농협과 고향사랑 기부제 업무협약을 했다. 증평군 제공
충북 증평군이 지난달 17일 농협과 고향사랑 기부제 업무협약을 했다. 증평군 제공

■ 쌀·한우·상품권+특산물

지자체들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답례품 선정이다. 답례품이 기부 유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봐서다. 고향사랑 기부제는 기부자에게 세액공제 혜택과 함께 기부금액의 30%까지 답례품으로 돌려준다. 많으면 150만원어치의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오세화 충청북도 민간협력봉사팀장은 “젊은 층에게 답례품이 기부 지역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게다가 지역 농특산물 등 답례품 공급이 늘면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있어 받는 쪽이나 주는 쪽 모두 신경 쓴다”고 말했다.

고향사랑기부제
고향사랑기부제

고향사랑기부제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치단체가 선정한 답례품을 보면, 농촌을 낀 자치단체는 쌀·한우, 도시형 자치단체는 지역화폐(상품권)가 단골 메뉴다. 여기에 이름난 특산물을 지역 대표 상품으로 곁들이기도 한다. 지자체 한 곳에서 100가지가 넘는 답례품을 준비한 곳도 있지만 경상남도는 이(e)경남몰 쿠폰과 경남사랑 상품권 등 2개만 선정했다. 경상북도는 23개 시군에서 5개씩 115개로 답례품 수를 한정하고, 지역 업체와 사회적기업 등이 입점한 인터넷쇼핑몰 ‘고향장터 사이소’ 상품권과 모바일 상품권 ‘경북마켓’까지 2개를 더해 117개를 답례품으로 정했다. 전라남도 역시 22개 시군당 5개씩 답례품을 정했다.

답례품 공급 업체 선정도 고민이다. 답례품 수요를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정현모 충청남도 공동체정책과 고향사랑기부제 담당은 “쌀 꾸러미·농산품 등으로 답례품이 몰려 있고, 수요와 단가 예측이 쉽지 않아 업체도 참여를 주저한다. 시행하면서 보완하려 한다”고 말했다.

전남도의 답례품 현황. 전남도 제공
전남도의 답례품 현황. 전남도 제공

■ 천하장사와 식사 데이트, 멍때리기, 벌초 대행

지역색이 뚜렷하고, 이름난 대표 상품이 있는 지역은 느긋하다. 충남은 어리굴젓(서산), 새우젓(홍성), 머드(보령) 등 지역 특산물에다 역사성을 더한 철화분청사기 어문병, 동탁은잔 세트, 백제금동대향로 모형, 백제 다기 세트 등을 답례품으로 내놨다. 부산은 고등어, 어묵, 대저토마토 같은 특산품에 신발 관련 상품권, 부산 시티투어 등 관광 상품도 곁들였다. 예향 광주는 말꼬리·족제비·염소 털을 이용해 전통 필장 명인이 만든 진다리붓 등을 준비했다.

관광 체류 상품도 눈길을 끈다. 민속씨름단을 운영하는 전남 영암군은 일정액 이상을 기부하면 ‘천하장사와 식사 데이트권’을 주고, 씨름을 체험하는 상품을 내놨다. 전남 나주는 고려·조선 시대 나주 목사가 묵었던 나주 목사내아 숙박 체험권을, 경남 의령은 벌초 대행권을 답례품으로 걸었다. 강원 영월은 불멍·별멍 등 ‘멍때리기’, ‘웰낙’(웰빙+즐거움) 걷기, 산채 도시락 등 체험 3종 세트, 강원 화천은 산천어 얼음낚시, 평화의 댐 오토캠핑장 이용권 등을 준비했다. 대전 서구의 이응노 미술관 이용권, 광주 동구의 미술 작품 등 도시형 문화상품도 눈길을 끈다.

기발한 시도도 있다. 대전 서구는 성형외과가 많은 특성을 살려 성형외과 이용권, 뷰티·메이크업 이용권 등을 답례품으로 추진했지만 행정안전부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접었다. 하지만 결혼식 축하 연주, 가수 지망생 음반 제작 등은 검토 중이다. 전국 자치단체의 고향사랑 기부제 답례품은 내년 1월1일 열리는 ‘고향사랑e음’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기부금 유치를 위한 홍보전도 치열하다. 부산시는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 이대호씨를 일일 홍보대사로 위촉했고, 전북도는 가수 송대관·현숙·진성·김용임, 배우 김수미씨 등을 명예 홍보대사로 내세웠다. 지역 연고 소주 상표를 통한 홍보전도 불이 붙었다.

김규식 맥키스컴퍼니 대표이사(왼쪽)와 이장우 대전시장이 지난 22일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 협약을 했다. 맥키스컴퍼니는 이제우린 소주 100만병에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 문구를 달아 유통할 방침이다. 대전시 제공
김규식 맥키스컴퍼니 대표이사(왼쪽)와 이장우 대전시장이 지난 22일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 협약을 했다. 맥키스컴퍼니는 이제우린 소주 100만병에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 문구를 달아 유통할 방침이다. 대전시 제공

■ 대도시는 빈곤하다

수도권이나, 대도시 지자체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도 도드라진 움직임이 없다. 서울은 지난 22일에야 관련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했다. 문화관광서비스, 농산물, 지역상품권, 공예품 크게 4가지 품목을 정했지만 세부적인 답례품은 서울사랑상품권 외에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술관 입장권이나 시티투어버스 이용권, 중랑 배, 강서 쌀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소속 기초단체들은 마땅한 답례품이 없어 지역상품권을 지급하는 곳이 많다.

경기 지역은 경기도와 수원시, 이천시, 안성시 정도만 답례품을 정했을 뿐 나머지 지자체는 준비 단계다. 인구가 1390만명인 경기는 제도상 ‘주소지’에 기부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여건이 불리하다. 대도시인 대전이나 기초단체가 없는 세종도 비슷한 처지다. 이현종 대전시 공동체지원팀장은 “제도 자체가 소멸 지역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것이다 보니 광역단체나 대도시가 기부금을 끌어오는 게 쉽지 않다. 대표 특산물을 찾기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인천의 역발상은 눈에 띈다. 인천시는 기부금 유치를 위한 공략 대상을 인접한 서울·경기도 거주 출향민으로 정했다. 이철수 인천시 행정국 민간협력과 주무관은 “인천을 떠나는 이들 가운데 60~70%는 서울·경기로 가고, 주변 수도권에서 인천으로 출퇴근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을 잘 설득하면 성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윤재관 한국정책경영연구원 지방소멸대응센터장은 “열악한 재정과 인구 감소는 수도권 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도 지역을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고향사랑 기부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안. 행정안전부 제공
행정안전부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안. 행정안전부 제공

행정안전부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안. 행정안전부 제공
행정안전부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안. 행정안전부 제공

■ 시행 전부터 규제 완화 요구

자치단체 1718곳 가운데 절반 정도(820곳)가 소멸 위기 지역인 일본은 수도권·비수도권 불균형, 지방 재정 격차 해소 등을 위해 우리보다 15년 이른 2008년에 고향납세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내 지자체들은 일본의 선례를 참조해 판을 짠다. 하지만 일본의 제도는 고향 기부, 세제 혜택, 답례품 제공 등 기본 틀은 고향사랑 기부제와 비슷하지만 운영 방식은 다소 다르다.

한 예로 고향사랑 기부제는 주소지·법인 기부를 금지하지만, 고향납세제는 주소지 기부와 법인 기부도 별도 제도로 인정한다. 또 우린 지역 화폐를 답례품으로 허용했지만, 일본은 안 된다.

신승근 한국공학대 교수(복지행정학)는 “제도를 먼저 도입한 일본 사례를 참고할 수밖에 없지만, 촉박한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도 우린 답례품 쪽에 너무 쏠려 있는 듯한 느낌”이라며 “고향·지역에 맞는 창업·복지·정책·사업 등을 제시하고 기부를 끌어내는 일본식 크라우드펀딩형 기부 등을 두루 살펴야 제도를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화·서신·문자메시지 이용 금지나 향우회·동창회 등 사적 모임을 통한 기부 권유·독려 금지는 고향사랑 기부제 안착의 걸림돌이란 말도 나온다. 국승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전화·문자 등을 이용한 기부 독려를 제한한 것은 기부금 모집에 상당한 제약이 될 수 있다”며 “기부를 받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구상은 제시하지 않은 채 모집에만 몰두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오윤주 기자, 전국 종합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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