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중간고사를 마친 강진 칠량중 학생들이 강진만 청보리밭을 배경으로 림보게임을 하며 머리를 식히고 있다. 강진/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 23돌] 행복 365 강진 칠량중학교
전교조 출신 심경섭 교장 1억4천만원 지원 끌어내
무상교육·방과후 활동 ‘심혈’
전학 떠나는 학교에서 전학 오는 학교로 바꿔
전교조 출신 심경섭 교장 1억4천만원 지원 끌어내
무상교육·방과후 활동 ‘심혈’
전학 떠나는 학교에서 전학 오는 학교로 바꿔
인천서 전학 온 현겸이
“이 학교 정말 신기해요 교복·밥값·택시비 공짜고
공부 못하는 친구도 멋져요 학원 안 가도 배울 것 넘치죠” 꿈이 축구선수인 전남 강진 칠량중 2학년 김현겸(14)군은 큰 키 덕분에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할 때마다 단골로 골키퍼를 맡는다. 골키퍼를 하다 보면 팔목을 삐거나 손가락을 다칠 때가 많다. 그럴 때 학교 인근 나라의원에 찾아가면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번번이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 “웬일인지 무척 궁금했어요. 최근에야 학교와 의원이 전교생 무료 진료를 약속했다는 것을 들었다니깐요.” 김군은 2년 전 인천 신석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전교생이 1000여명에 이르는 큰 학교여서 운동장은 늘 붐볐다. 좋아하는 축구를 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김군은 귀농한 부모를 따라 지난해 3월 면단위 작은 학교인 강진 칠량중에 입학했다. ‘행복’은 낯선 얼굴로 서서히 찾아들었다. “신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전교생한테 교복·체육복·참고서를 공짜로 나눠줬어요. 점심·저녁 급식비도 내라 하지 않았고요. 학교가 끝나면 집까지 편하게 택시를 타고 가는데 무료라는 거예요. 지난 여름엔 전교생이 1인당 10만원만 내고 중국 베이징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어요. 칠량은 다른 나라 같아요.”
김군은 초등학교 시절 하루 4시간 이상 학원에서 보냈다. 늘 시간에 쫓기며 시험공부를 했다. 하지만 강진에선 학과공부 말고도 다른 배울 거리가 많았다. 방과후 활동으론 사물놀이와 연극 연습에 참여했다. 토요일엔 바지락 주산지인 강진만의 영풍·덕동 갯벌에 나가 쓰레기를 주우며 깨끗한 환경의 소중함을 배웠다. 학교 텃밭에 배추·열무·감자 따위를 가꿔 김치를 담가 이웃과 나누는 추억도 쌓았다. 친구들도 넓고 깊게 사귀었다. 지난해 5월에는 광주 치평중 학생들의 집에서 자면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고, 같은해 7월에는 갯벌체험을 온 치평중 학생들과 바닷속에 풍덩 빠지며 우정을 다졌다. 11월에 열렸던 학교축제 너울제 때 전교생이 호흡을 맞춰 펼친 풍물공연에서 갈고닦은 북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매주 수요일에는 인근 복지시설인 ‘행복한 집’을 찾아갔다. 홀몸으로 사시는 오동순(70) 할아버지와 결연을 맺어 학교생활도 들려주고 불편하신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인천에선 유치원 때 요양원에 한번 가본 적이 있어요. 그다음에는 바빠서 통 못갔죠. 외롭게 사시는 분들이 무척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부모님한테 감사하는 마음도 저절로 들었어요.”
부모와 이웃뿐 아니라 친구들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인천에선 공부만이 기준이었는데 강진에 온 뒤로는 노래를 잘 부르거나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들도 다시 보게 됐다. “제 단짝 호문이는 축구를 엄청 잘해요. 공부에는 취미가 없지만 유명한 요리사가 된대요. 나중에 근사한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김군의 어머니 조미옥(44)씨는 “귀농을 할 때 두 아이의 교육문제가 제일 걱정이었다”며 “지난해 3학년과 1학년인 형제를 낯선 학교에 보냈는데 인성교육과 체험활동이 어느 학교에 비해서도 손색없어서 주변에도 입학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특히 한 달에 60만원 이상 들어가던 교육비가 전혀 들지 않는 현실을 놀라워했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주인공은 2008년 공모제로 뽑힌 심경섭(58) 교장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남지부장 출신인 그는 뚝심으로 학생 수가 38명까지 떨어져 폐교 위기에 몰렸던 작은 학교를 되살려냈다. 임기 4년을 보장받은 그는 서둘지 않았다. 우선 연중 돌봄학교 운영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학생들이 아침 8시에 등교하면 저녁 9시까지 맡았다. 다양한 방과후 활동에 정성을 들였고, 저녁엔 꿈틀 공부방을 운영해 학습 분위기를 돋웠다. 농어촌 버스가 끊긴 시각에 돌아가는 학생들을 위한 택시수송 작전도 그의 아이디어다.
각종 교육 공모 사업에도 눈을 돌렸다. 농산어촌 돌봄학교, 전남 무지개학교, 삼성 꿈장학재단의 배움터 등 8개 기관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1억4000여만원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이 지원금으로 무상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했다.
입소문은 빠르게 번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학생 30% 안팎이 읍내로 빠져나가던 분위기가 주춤해졌다. 반대로 읍내에서 자녀를 보내오는 놀라운 일까지 벌어졌다. 인근 보성과 나주 등지에서 학생이 전학 오고, 입학 조건과 절차를 묻는 전화도 이어지고 있다.
김중주(50) 학교운영위원장은 “학생수가 올해는 55명이고, 내년엔 64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라며 “교육당국이 기숙사만 지어주면 학급 증설과 교사 증원이 가능해져 상치과목이나 겸임교사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강진 칠량중 학생들의 환한 얼굴이 주민 김정기씨가 주마다 200~300송이씩 학교에 선물하는 장미꽃을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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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돌봄학교인 강진 칠량중에선 학생들이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종일 학교에 머물며 방과후 활동과 꿈틀 공부방에 참여한다.
김군은 초등학교 시절 하루 4시간 이상 학원에서 보냈다. 늘 시간에 쫓기며 시험공부를 했다. 하지만 강진에선 학과공부 말고도 다른 배울 거리가 많았다. 방과후 활동으론 사물놀이와 연극 연습에 참여했다. 토요일엔 바지락 주산지인 강진만의 영풍·덕동 갯벌에 나가 쓰레기를 주우며 깨끗한 환경의 소중함을 배웠다. 학교 텃밭에 배추·열무·감자 따위를 가꿔 김치를 담가 이웃과 나누는 추억도 쌓았다. 친구들도 넓고 깊게 사귀었다. 지난해 5월에는 광주 치평중 학생들의 집에서 자면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고, 같은해 7월에는 갯벌체험을 온 치평중 학생들과 바닷속에 풍덩 빠지며 우정을 다졌다. 11월에 열렸던 학교축제 너울제 때 전교생이 호흡을 맞춰 펼친 풍물공연에서 갈고닦은 북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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