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난 뒤인 지난 13일 새벽 선로 작업 중 달려오던 고속열차(KTX)에 치여 숨진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긴급한 순간에 작업 손수레를 선로에서 치우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으나, 노동자들이 손수레를 선로에서 밀어내는 노력 끝에 고속열차와 손수레의 충돌 사고를 피했다.
23일 사고를 조사 중인 경북 김천경찰서와 사고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3일 0시47분께 경북 김천시 경부선의 상행선 방향 김천구미역 근처에서 선로 보수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4명이 고속철도 182호 열차에 치였다. 이 사고로 장아무개(51)씨 등 2명이 숨지고 김아무개(43)씨 등 2명은 찰과상을 입었다. 당시 열차는 시속 170㎞로 달리고 있었다.
김천경찰서는 사고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생존 노동자들한테서 “숨진 장씨 등이 손수레를 마지막까지 치우려다 시간이 지체되며 사고를 당했다”는 진술을 최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은 대부분 일치한다. 뒤늦게 열차를 발견한 장씨 등이 손수레를 치우려다가 열차를 피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노동자들은 모두 선로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코레일 협력업체 ㈜ㅅ랜드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당시 모두 11명이 트롤리(선로를 따라 미는 손수레)를 끌고 선로 주변 자갈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러 가고 있었다. 당시 열차는 전날 밤 10시 부산역(부산시 동구)을 출발해 다음날 새벽 1시19분 행신역(경기 고양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전날 밤 11시께 김천구미역 근처를 지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7시45분과 8시33분 경주 내남면에서는 각각 5.1과 5.8 규모의 큰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열차 운행 시각이 1시간가량 지연됐다.
경찰은 열차의 지연 운행 사실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당시 작업반장을 맡은 협력업체 직원 김아무개(61)씨는 경찰 진술에서 “코레일 직원으로부터 작업 승인을 받고 선로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간작업관리장을 맡고 있는 코레일 직원 이아무개(42)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승인없이 선로에 들어간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경찰은 사고가 나기 직전 협력업체 직원 김씨와 코레일 직원 이씨가 휴대전화로 통화를 한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통화 내용에 대한 양쪽 진술은 여전히 엇갈려 거짓말탐지기 조사 등을 할 계획이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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