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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면 안됩니다”…세월호 1천일 맞아 안산시민들 구술백서 나와

등록 2017-01-08 17:05수정 2017-01-08 21:49

시민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시스템이 공정한 나라” 원해

“잊혀지면 안됩니다.”

세월호 참사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경기도 안산시민들이 겪은 당시 상황과 변화된 일상, 세월호 생각 등이 백서로 나왔다. 9일 안산시가 세월호 참사 발생 1000일을 앞두고 발행한 ‘2014 안산의 기억’은 ‘0416 안산人 세월호 참사 구술백서’라는 부제로 235쪽에 걸쳐 33명의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억 전달자’라는 이름으로 당시 기억을 제공한 안산의 시민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와 연령은 물론 직업도 대학생부터 주부, 자영업자, 택시기사, 의사, 영화감독 등으로 다양했다.

이들은 구술 자리에서 “왜 인터뷰에 응했습니까?”라는 질문에 한결같이 이런 답을 내놓았다. 세대와 성별은 물론 정치적 성향도 달랐지만 잊어서는 안 될 이유로 “반복되면 안 되니까요. 내가 아프지만 기록을 통해서 다시는 이런 나라가 안되었으면 하니까요”라고 했다.

이들에게도 1000일 전 4월16일은 현기증과 충격, 탄식으로 다가왔다.

병원에서 미용실에서 또는 자원봉사를 간 군부대에서, 노조 사무실에서, 차 안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배가 침몰했다는데’, ‘안산 단원고라 학생들이라는데’, ‘몇 십 분 만에 구조를 다 했다는데’, ‘아이들은 못 구했다는데’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무너졌다. 아침잠이 많던 주부는 새벽이면 화병처럼 일어나서 가슴을 치고 있었고, 분향소가 코앞에 설치된 한 자영업자는 발길을 떼지 못한 채 숨을 죽였다.

왜 그랬을까? ‘꼼짝하지 말라’라던 그 짧은 시간에 배에 갇혀 어린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이 좀체 이해되지 않았다.

컴퓨터 수리 가게를 운영하는 김영환씨는 “배가 많이 가라앉을 때 그때 왜 모든 것을 역량을 쏟아부어서 구하지 않았는지. (배가)가라앉는 순간에도 구할 수 있었는데 왜 해경은 쳐다만 보고 그냥 민간어선들이 구하고…이건 나라도 아니라고. 정부는 그래도 칠십몇명 살지 않았냐고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건 어민들이 구한 거지 나라가 구한 게 아니잖아. 국가는 단 한명도 구하지 않았다고 난 생각해. 진짜 구하려면 배가 가라앉을 때, 그때 모든 것을 동원해서 구했어야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분향소를 이제껏 2차례 갔다고 했다. “애들 얼굴 보면 눈물만 나올 거 같아서…더 중요한 거는 진실규명 하는데 있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는 개업한 가게 창에 노란 리본을 붙여놨다. 경찰들이 이후 가게를 들락날락 하더니 “내가 어디 갔다 오면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보더라”고 했다.

아들 1명을 둔 음향기기 기술자인 이상하씨는 “초기에 안산 사람들이 버스를 타도 버스에서 웃는 사람이 없는 상황 있잖아요. 다들 조용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다들 조용. 그때가 가장 기억이 나요.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알바생이 갑자기 확 운다거나. 자기네끼리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친구 동생이 이번에 뭐 시신으로 발견됐다더라. 그리고 아이들 한창 막 발견되고 그럴 때를 잊을 수가 없죠. 그건 아마 평생 갈 거 같아요”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딸 셋을 두고 미용실을 경영하는 김인아씨는 “추모행사를 광장에서 할 때 생존자 아버지가 살아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한 거예요. 전 다른 말은 기억이 안 나고 참 기가 차잖아요. 진짜로 살아온 게 죄인이 되어 버린 거예요…살아온 아이들은 공포가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그런데 살아온 아이들을 위로해 주지는 못 할망정, 우리 사람들이 참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해를 넘기면서 세월호가 지겹다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택시기사 조남용씨는 “처음에 사건이 났을 때는 가슴 아파하는 손님들이 많았죠. 세월호 당사자들에 대한 미안함, 애잔함 같은 것을 말하기도 하고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죠. 요즘 세월호 관련해서 무슨 뉴스가 난다거나 집회를 한다든가 그러면 손님들의 첫 반응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예요. 손님들이 가끔 세월호 관련해서 보상은 얼마를 받았다느니, 지겹네 하죠”라고 했다. 그는 “(이때) 제가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지 않으냐.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있고 정부에서 확실하게 설명도 못 하고 있는데 그건 어떡하냐고요. 그런 부분이 다 해결됐을 때 그게 잊히는 것이지 무조건 강제적으로 잊어라 하면 그게 잊히냐고요 하면 손님들이 아 그건 맞네 하더라고요”라고 했다.

이상하씨는 “자기 생존의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뭔가 보장되는 건 없고 그러니까 각개전투인 거죠. 사고 난 것도 개인적 불행이고 개인적인 사고인데 이걸 왜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돼라고 하는 거죠.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그러면 그러지 않겠죠. 그런데 남의 일이니까 남의 일로 쉽게 치부해 버리고…이 사회가 이렇게 하니까 나라도 좀 살아야겠다, 나부터 좀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거고 어쩌면 일부러 악에 받쳐서 더 위악에 가깝게 그런 생각을 내면화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사회의 병폐, 사회적 모순이 그런 사람들의 막말에서 드러난다고 봐요”라고 했다.

세월호가 가져다준 변화도 컸다. 누군가는 2년째 배를 타지 못하고 있으며, 아이들 캠핑 보내기도 어렵다고 했다. 한국인과 결혼해 아들 2명을 두고 있는 러시아 여성 알리샤는 “아이들 캠핑가는 것도 걱정”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년태씨는 “두 딸을 두고 있는데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생활의 변화도 변화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김영환씨는 “내 일이 아니고 남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나는 재수가 좋아서 안 당했다고 생각을 하는 거지…세월호 유가족들도 그 얘기를 했잖아요. 이렇게까지 당해보니까 알겠다고. 그 전에는 먹고 사는데 바빠서 나라에서 뭘 하든 관심도 안 가졌는데. 그런데 이런 것에 관심을 안 가지니까 이 지경이 됐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러니까 평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해.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하는 거지 정치인을 위해서 정치하는 게 아니잖아요. 진심으로 국민을 위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치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고 했다.

조남용씨는 “일단 한표의 주권 행사를 정말 신중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참사가 일어나고 해결되는데 정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투표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두 번째로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좀 더 돈독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곁에 있는 것이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고 했다.

이혜령(56) 안산시 세월호 사고수습지원단 전문위원은 “시민들은 언론보도처럼 일률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사안에 따라 생각이 달랐다. 진보적이라는데 단원고 교실 존치나 특례법 이런 것은 반대하고, 세월호 지겹다며 그만해야 한다면서도 진상규명은 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시스템이 공정하게 돌아가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는 답은 한결같았다”고 말했다.

안산/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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