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제37돌 기념식…참석자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 대통령, 박관현·표정두·조성만·박래전 등 5·18 열사 직접 거명
5·18 유공자·세월호 유족·시민들 문 대통령 연설에 환호
전인권 노래·전국 각지 음악인들 합창… ‘통합의 기념식’ 눈길
18일 오전 국립광주5·18민주묘지에서 제37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5·18유공자 이세영(57·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첫 단추를 잘 꿰시네요.”
18일 오전 국립광주5·18민주묘지에서 제37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5·18민주유공자 이세영(57)씨는 휠체어에 앉은 채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넸다. 1980년 5월21일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에 맞서 시위를 하던 그는 집단발포로 총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5·18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5·18’의 상징이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제창은 안된다”고 하는 것에 분노가 일었다. “그들의 기념식이었잖아요. 우리의 기념식이 아니라…. 그들의 입맛에 맞고 프로그램을 짜고.”
18일 오전 국립광주5·18민주묘지에서 제37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전남 담양 어르신들이 기념식을 지켜보고 있다.
“요것이 바로 진정한 기념식이여….”
이씨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헬기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강조했다. 5월21일 집단발포가 행해졌던 그날 이씨 등 광주시민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가 누구인지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5월21일에만 34명의 시민이 총에 맞아 숨진 ‘학살행위’는 사법적으론 내란죄의 ‘폭동’으로 유죄가 나왔을 뿐, 내란목적살인죄의 범죄행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날 5·18기념식은 ‘통합 5·18’을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메시지가 뚜렷하게 전달됐다. 기념식 중 합창단도 대전·제주 등 전국에서 온 음악인들로 구성됐다.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 표명을 했던 가수 전인권씨도 이날 기념식 무대에 섰다. 그는 이날 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많이 불렸던 <상록수>를 애틋하게 불러 진한 감동을 줬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관현·표정두·조성만·박래전 등 수많은 젊음들의 이름을 직접 거명했다. 고 박래전의 형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오늘 대통령께서 5월 진상을 알리려다가 숨진 제 동생 등 여러 열사들의 이름을 호명해 광주가 기억해달라고 하셔서 뭉클했다”며 “(5·18과 광주진상 규명 등에 대해) 기대보다 더 한발 나가셔서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상집씨도 “아따, 새시대가 와부렀네요. 대통령께서 광주정신과 촛불정신을 잇겠다고 천명하셨네요. 전국의 5·18 진상규명 노력을 기억하자는 말씀을 듣고 찡하데요”라고 말했다.
18일 오전 국립광주5·18민주묘지에서 제37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끝난 뒤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 세월호 어머니는 이날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단원고생 고 윤민양의 아버지 최성용(56)씨는 “기념식장이 개방돼 참석할 수 있었다. 5·18과 세월호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상규명이 다 이뤄지고, 자식들이 안전한 나라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탈권위와 개방성’이었다. 과거 5·18민주화운동기념식 때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사전에 비표를 신청하지 않으면 기념식장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날은 신분증만 제시하면 누구나 기념식 참석이 가능했다. 기념식장 주변엔 광주뿐 아니라 전남 인근 마을에서 ‘소풍’ 마실을 나온 어르신들도 눈에 띄었다. “귀경 나왔제. 울동네 동창도 5·18 때 죽었어. 신분증만 보이면 참석할 수 있다고 해서 같이 왔어.” 담양군 대덕면 성곡리에 사는 박병은(76)씨는 “참 보기에 좋다”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와 달리 이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엔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5·18민주영령들에게 헌화·분향하는 것도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줄 선 순’이었다.
18일 오전 국립광주5·18민주묘지에서 제37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끝난 뒤 시민들이 경호원과 셀카를 찍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한 목소리로 마음껏 불렀다. 기념식이 끝난 뒤에도 시민들은 기념식장을 떠나지 않고 문 대통령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묘역을 돌며 참배한 문 대통령이 유영봉안소 쪽으로 나오자 “와”하고 환호했다. 시민들은 문 대통령이 손은 흔든 뒤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문 대통령과 ‘셀카’를 찍지 못한 일부 시민들은 경호원의 손목을 끌고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국립5·18민주묘지는 과거의 한숨 대신 환호가 가득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