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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담담] 그날의 기억

등록 2018-04-18 14:59수정 2018-04-18 20:02

개인의 기억은 공동의 행동과 맞물려 끊임없이 기록된다
병실에서 지켜본 세월호, 4년이 지났어도 수술자국처럼 뚜렷한 아픔

정은영
광양 공감#22 마을문화기획자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의 그 날을 기억한다. 이들 중에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진하고 굵은 흔적을 남겨 영구적으로 잊히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 각자가 가진 그 날의 기억은 어떠한 방식으로 지속하며 사람과 사람의 의식을 이어나갈까.

1996년 1월6일 토요일 안개. 오전 6시에 일어나 그녀의 방 앞으로 간다. 신부 화장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 서둘러 깨웠다. 다음 순간 무심결에 방 안의 텔레비전을 켰다. 그날의 첫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공간의 모두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가수 김광석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의 결혼식 날 아침, 우리는 마치 젊음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을 공유했다. 그날의 기억은 굳이 언론을 통하지 않더라도 해마다 지속해서 반복된다.

2014년 4월16일 수요일 맑음. 이른 아침,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지난 겨울 매실나무 가지를 잘라주다 돌아간 발목이 끝내 말썽을 부려 병원에 가는 길이다. 수술 때문에 밥을 거르고 들어선 병원의 아침은 한가로웠다. 6인용 입원실을 배치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려는 순간 누군가 병실 텔레비전의 화면 밑으로 흐르는 한 줄 뉴스를 보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속보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500명 탄 여객선 조난 신고, 전남 진도 관매도 부근 해상, 인천에서 제주도 가는 여객선.”

수술 직전 병실에서 지켜본 세월호 참사는 좀처럼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주변에 배 여러 척이 도착했고 공중에 헬기가 선회하는 장면을 보며 많이 기울긴 했지만 곧 승객들이 줄지어 구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때마침 방송은 ‘세월호 승객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띄우기 시작했다. 마음을 진정하며 수술대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고 병실에 돌아왔을 때 세월호 상황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그 후 2주간을 같은 병실 사람들과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세월호의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다. 참사의 현장이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비규환이었겠으나 온종일 생중계를 보는 병실 사람들의 가슴도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병실 안은 회복 중인 환자들의 앓는 소리와 텔레비전으로 전해지는 유가족들의 흐느낌이 묘하게 중첩되어 내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후 4년, 퇴원 후 지역에 차려진 분향소의 추모 열에 목발을 짚고 줄을 섰고, 가족들과 함께 팽목항을 찾았다. 부산에서 팽목항까지 걸어서 가는 일행 중에 끼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 나가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서명에 참여하고, 리본을 달았으며, 세월호 참사 관련 영화를 함께 보았다. 슬퍼했으며 그보다 더 크게 분노했다.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각자의 기억과 기억을 이어주는 흔적이고, 다르고 같은 모두의 기록이었다. 지워지지 않는 수술 자국처럼 가슴 한쪽의 멍울로 남았다.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 그라시안은 ‘기록은 기억을 남긴다’는 말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개인의 기억은 공동의 행동과 맞물려 끊임없이 기록되고, 때론 마치 강제한 것처럼 재생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방금 텔레비전을 켠 것처럼 또렷하게 되살아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코 반감되지 않는다.

지난 주말과 월요일 곳곳에서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많은 시민이 다시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모여 또렷한 그들의 기억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그 날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약속도 굳건히 했다.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기록할 때 진실은 더 이상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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