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림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가운데)와 부인 이맹숙씨,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8일 오전 제주시 연동 제주도의회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했다.
원희룡 무소속 제주지사 후보와 부인 강윤형씨가 8일 오전 제주시 아라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7일 오후 7시 제주시의 아파트 밀집지역인 신시가지에 있는 치킨집에 50대 중반의 고교 동창생 4명이 모여앉아 지방선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민주당 성향이잖아.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원희룡(무소속)을 찍어야겠어. 주변에 원희룡을 찍으라고 독려하고 있어. 문대림(민주당)은 의혹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자네들도 이번에 원희룡을 찍어.” 오종순(55)씨가 맥주를 한잔 마시며 말을 건넸다. 옆에 앉아 있던 오태양(55)씨는 고개를 끄덕이다 오씨가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피하자 말을 꺼냈다. “저 친구가 뭐라고 해도 난 문대림 찍을 거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민주당을 지지해야 돼. 원희룡이 지난 4년 동안 한 게 뭐냐. 서울만 쳐다보고, 난개발 막았다고 했지만 곳곳에 타운하우스가 들어서면서 오히려 난개발을 부채질했어. 국회의원 때도 얼마나 말을 많이 바꿨나. 똑똑한 게 전부가 아니야.”
앞에 앉아있던 문순팔(55)씨는 이들과 다른 입장이었다. 문씨는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난 김방훈(자유한국당)이를 찍겠어. 안될 줄 알지만 나와는 먼 사돈뻘이 되거든. 사실 후보들 정책이야 오십보백보 아니냐”고 했다. 문씨 옆에 앉은 김용범(55)씨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자리에선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이번 선거가 너무 네거티브로 흐르고 있어 뽑을 사람이 없다. 토론회를 보니 말은 고은영(녹색당) 후보가 제일 낫더라”고 했다.
40년 가까이 된 친구들인 이들은 원희룡 후보와 동갑내기지만, 지지 후보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달랐다. 그만큼 제주도지사 선거에 대한 민심은 갈피를 못 잡는 듯했다. 지난 5일 만난 택시기사 송아무개(63)씨는 “원 후보가 대중교통체계를 개편하면서 우리 택시업계를 죽였다. 택시기사들 가운데 원희룡을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지만,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말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에서 국회의원도 하고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송씨는 “문대림 후보의 항공기 요금, 뱃삯, 택배비 반값 공약은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볼 때 엄청 중요하다. 문제는 가능성이다. 그게 실현된다면 문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송씨는 아직 후보를 선택하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민주당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지역이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지난 6일 마지막으로 조사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원희룡 무소속 후보가 문대림 민주당 후보에 6.1~12.4%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하지만 이런 흐름이 지속할지는 의문이다.
국회의원 3개 선거구를 가진 제주도는 지난 17대 이후 내리 4번 연속 민주당이 모든 선거구를 석권하고 있는 민주당 텃밭인 데다 민주당 지지도가 60%에 가깝다.
민주당 바람이 거센 제주에서 원 후보의 선전은 ‘인물론’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국회의원과 도지사 선거를 여러 차례 경험한 정치인답게 그동안 비판적이었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는 한편, 상대 후보에 대해서는 토론회와 논평 등을 통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등 몰아붙였다.
임기 내내 중앙정치만 바라봤다는 이른바 ‘서울 바라기’라는 모습과 소통 부재 논란 등에 대해 사과하면서 경쟁자인 문 후보에 대한 선거전략이 먹혀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원 후보 쪽 관계자는 “인물론이 먹히고 있다. 유권자들은 문 후보가 문재인 마케팅을 너무 해서 식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중앙당에서 지원 왔다고 유권자들이 찍지 않는다. 김우남 전 의원이 문 후보 쪽에 합류했지만 너무 늦었다. 여론조사 추이가 굳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후보 쪽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분위기다. 특히 문 후보와 지난 4월 경선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김우남 전 의원이 전격적으로 합류함으로써 문 후보 쪽은 지지세 확산에 추진동력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7일 오후 제주시 민속 오일시장 유세에서 도민과 당원들을 향해 “호소한다. 당으로 돌아와 달라. 열정과 노력을 다하면 역전은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 후보가 다소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된다. 힘이 돼주면 극복할 수 있다”며 문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문 후보 쪽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의 합류로 김 의원 지지자들과 당내 갈등에 실망했던 당원들까지 집결함으로써 5% 이상 지지율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원 후보가 현직 지사여서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샤이 문대림’ 세력, 여론조사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이주민, 연정 제안을 통한 시민사회 진영의 지원 등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선거에선 “이 당 저 당 해도 괸당(친척)이 최고”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지연·혈연·학연과 함께 지난 4년 동안 5만4천여명이 늘어난 이주민들의 표심과 북미정상회담도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