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엽사가 걸음을 멈추고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사냥개가 숲을 가로질러 뛰었다. 플래시를 비추자 2m 앞 비탈에 뽀롱이가 서 있었다.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탕’, ‘탕’ 총성이 울렸다. 뽀롱이가 비탈에서 굴러떨어졌다.
퓨마 뽀롱이는 18일 밤 9시44분 대전시 중구 사정동 대전시립동물원 건초보관소 뒤 야산에서 산탄총에 맞고 숨졌다. 뽀롱이는 여덟살 암컷으로 몇 해 전 새끼 3마리를 낳은 어미기도 하다. 뽀롱이는 이날 오후 4~5시 사이 열린 우리 문밖으로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19일 오전 대전오월드 사육사가 18일 밤 퓨마 뽀롱이가 사살된 지점을 가리키며 당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뽀롱이는 위 원에서 총에 맞고 아래 원으로 구른 뒤 숨을 거뒀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뽀롱이가 우리 밖으로 나선 것은 사육사가 이날 오전 9시께 혼자 우리를 청소한 뒤 철문을 잠그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전동물원을 관리하는 대전도시공사와 금강유역환경청은 이 사육사를 조사하고 있다.
뽀롱이가 포획조와 처음 만난 곳은 우리에서 500m 떨어진 천연기념물 시범사육장 근처 야산이었다. 오후 6시50분께 수의사와 사육사들은 엉덩이 쪽에 마취총을 쏘았다. “마취제를 맞은 뽀롱이는 고개를 돌려 꼬리 쪽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걸어갔어요. 마취제가 퍼지면 생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 사라져버렸어요.” 뽀롱이를 찾기 위해 경찰특공대과와 엽사, 사냥개, 사육사 등이 투입됐다. 그러나 마취제가 효과를 내는 2시간 동안 뽀롱이를 찾을 수 없었다.
“고양잇과 동물이 나무에 올라가 있으면 쉽게 잡을 수 있어요. 그래서 플래시로 나무들을 살피며 올라갔는데…, 갑자기 뽀롱이가 너무 가까이에서 나타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사살 현장에 있었던 사육사는 19일 “우리가 실수해서(우리 문을 열어놓아서), 뽀롱이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공공동물원의 한 수의사는 19일 “마취총을 맞고 2시간이면 1차 마취가 깨지만, 2차 마취는 1차보다 더 잘 듣는다. 2차 마취보다 사살을 택한 것은 경찰의 과잉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른 동물원의 한 수의사는 “우리 밖에 있는 흥분한 퓨마를 다시 마취한다는 건 쉽지 않다. 많은 양을 쓰면 퓨마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퓨마 사살에 대해 청와대와 대전동물원 게시판엔 ‘사살이 최선이었냐’, ‘책임자 처벌하라’는 항의가 잇따랐다. 추가 사고의 부담 때문에 경찰이 서둘러 뽀롱이를 사살했다는 것이다. 뽀롱이의 죽음은 동물원 폐지 주장으로 번지고 있다. 19일 오후 3시까지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0여건의 동물원 폐지 글이 올라왔고, 4만여명이 서명했다.
그러나 대전동물원과 대전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열렸다. 퓨마는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맹수이고, 동물원을 벗어나면 시민을 해칠 가능성도 있었다. 사살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송인걸 최우리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