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봉헌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수원교구 탄소중립 선포미사에서 신자들이 7년 여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상징물을 봉헌하고 있다. 솔방울과 나뭇잎은 생태교육을 상징한다. 수원/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구의 울부짖음을 더는 외면하면 안 됩니다.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 속에 수억명의 기후 난민이 생존 위기를 겪는 등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11일 오전 10시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 주교좌성당. 천주교 신부와 수녀, 신자 등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 수원교구 탄소중립 선포’ 미사가 열렸다. 수원교구장인 이용훈 주교는 “지구의 울부짖음에 응답하기 위해 2030년까지 교구 222개 본당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2040년까지 100%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수원교구의 ‘2040년 탄소중립 선언’은 천주교 15개 교구는 물론 국내 종교단체 중에서는 최초이며, 유엔과 정부가 밝힌 탄소중립 목표 연도보다도 10년 빠르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최대한 줄이고 남은 배출량은 자연적 또는 기술적으로 흡수하도록 해 실질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우선 2030년까지 한강 이남 경기도 지역 222개 성당 전체에서 쓰는 전기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에너지 자립을 이루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성당마다 유휴 부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에너지협동조합을 구성해 햇빛발전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자체적으로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기 어려운 도심지 성당은 지방정부와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해 지역 햇빛발전소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인 양기석 신부는 “222개 성당의 평균 연간 전기사용량은 12만7천㎾ 정도”라며 “성당 1곳당 100㎾/h 규모 햇빛발전소를 설치해 2030년까지 100% 전력 자급화를 이루면 60~70%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며 “2040년까지 성당 내 전기 외에 가스와 석유 등의 기타 에너지원과 성당에서 소비되는 모든 물품을 탄소가 적게 들어가는 물품으로 대체해 100% 탄소중립을 이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원교구 쪽은 에너지 자립화에만 성당 1곳당 1억5천만원씩 모두 33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천주교 수원교구청과 222개 성당이 에너지협동조합에 참여해 출자하고, 정부의 재생에너지 지원을 통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앞으로 신축될 모든 성당은 에너지자립 건물 인증을 받도록 하고, 성당 리모델링 때도 에너지자립형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하기로 했다. 수원교구는 10일 한국에너지공단과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성당 건물 에너지 진단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협력을 해나가기로 약속했다.
이용훈 마티아 주교가 1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수원교구 탄소중립 선포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제단 앞에는 신자들이 7년 여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봉헌물이 놓여 있다. 수원/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수원교구의 이날 선언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탄소감축을 위한 예산과 방법은 물론 ‘2030년 에너지 자립’, ‘2040년 탄소중립’ 등 목표치도 구체성을 띠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통과시켜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했는데, 여기서 설정한 탄소중립 목표 연도는 2050년이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로마교황청도 목표 연도가 2050년도이며, 유엔은 2030년까지 45%의 탄소중립을 계획한 상태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아이피시시)는 지난달 9일 ‘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높아지는 시기를 2021~2040년 사이로 제시했다.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2030~2052년으로 제시했던 것에 비춰, 10년가량 앞당겨 잡은 셈이다.
이 주교는 “지난해 6월 교황청이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는 2018년 아이피시시 특별보고서에 기초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피시시가 빨리 탄소 발생을 줄이지 않으면 2040년 이전에 지구 평균기온 1.5도를 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없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을 더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목표를 2040년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용훈 마티아 주교가 1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수원교구 탄소중립 선포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제단 앞에는 신자들이 7년 여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봉헌물이 놓여 있다. 수원/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수원교구는 이날 탄소중립 선언과 더불어 지난해 로마교황청이 생태계 위기를 초래한 인간의 생활 방식을 바꾸기 위해 제시한 ‘7년 여정’ 목표에 따라, 앞으로 7년간 △생태계 위기 시대 기후난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지속가능한 생산과 유기적 소비 및 투자를 위해 탈석탄 금융과 친환경 재생에너지에 투자 등 7가지의 실천 목표를 이행하기로 했다.
특히 내년 9월까지 1년간을 ‘지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해’로 정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하지 않기 등 생활 속 46개 실천 내용을 정한 뒤, 수원교구 93만명의 신자가 이를 실천하고 교구 누리집에 등록하는 식으로 연간 5천만회의 탄소중립을 실천하기로 했다. 또 여기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으로 기후난민 지원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이날 선포식에서 검소한 생활을 약속하는 뜻으로 모형 자전거를 봉헌했던 인아무개(중2)군은 “기후변화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보면서 두려웠다”며 “어른들이 왜 (지구를) 이렇게 해놓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이 주교는 “기후위기는 인류의 삶의 방식, 특히나 부유한 국가와 지역의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초래한 측면이 크다. 일반적으로 전세계 인류는 역사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 순간이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며 “인류가 지속되느냐 멸절되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현세대가 훗날 책임을 외면한 무책임한 세대가 아니라 막중한 책임을 기꺼이 떠맡았던 세대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인류는 지속이냐 멸절이냐 갈림길에 있어”
[인터뷰] 천주교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탄소중립 2050년 법제화?…절박함이 없다”
“기후위기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소비지향적인 인류 삶의 방식이 초래한 결과물입니다.”
‘2040년 탄소중립 선언’을 이끈 천주교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과도한 탄소 발생으로 인해 생긴 지구온난화를 막고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수원교구의 노력을 천명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기도 한 이 주교를 지난 8일 천주교 수원교구청에서 만났다.
―수원교구의 탄소중립 목표 연도가 교황청과 유엔에 견줘 10년 정도 빠르다.
“지난해 6월 교황청이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는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낸 ‘지구 온도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로 제한해야 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지 못하면 지구의 기후위기를 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특별보고서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올해 IPCC는 빨리 탄소발생을 줄이지 않으면 2040년 이내에 지구 평균기온이 1.5˚C를 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더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목표를 2040년으로 잡았다.”
―정부와 국회도 최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을 통과시켰다.
“2050년에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것인데 안이한 대처다. 적당히 기다리겠다는, 절박함이 없는 법안이다. 실효성 있는 목표를 설정해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사회적 약자와 미래세대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효성 있는 법안과 함께 강력한 의지를 갖고 국민이 동참하게 해줘야 한다.”
―과학계의 미래예측을 종교계가 적극 수용했다.
“과학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하지만, 과학적 산물 중 많은 것이 인류와 세상을 위해 큰 역할을 해왔다. 과학적 산물을 통해 신앙인들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깨닫는데 도움을 받는다. 인류의 잘못을 바로잡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화를 위해 과학적 데이터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 천주교도 기후위기, 생태계위기의 시대에 신앙의 가르침과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 대처가 가능하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