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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수도권

‘300살 들메나무’ 신도시 개발에 잘려나갈 위기…“지키자”

등록 2023-02-27 08:00수정 2023-02-27 08:25

대장 안동네에 있는 들메나무. 300∼400살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과거 마을 주민들이 제사를 올리는 도당나무였다. 이승욱 기자
대장 안동네에 있는 들메나무. 300∼400살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과거 마을 주민들이 제사를 올리는 도당나무였다. 이승욱 기자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이엔에이(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오래된 팽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오랫동안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쉼터이자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었지만, 새 도로 건설이 추진되면서 잘려나갈 위기에 처한다. 문화재나 보호수로 등록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 우영우와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팽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고 도로는 마을을 우회하는 새 노선으로 변경된다.

지난 25일 오전 찾아간 경기 부천시 대장동 220번지에도 ‘우영우 팽나무’가 있었다. 수종이 ‘들메나무’라는 점은 달랐지만, 나무가 처한 곤혹스러운 처지만큼은 드라마 속 팽나무와 다를 게 없었다. ‘대장 안동네’로 불리는 이곳은 반남 박씨들이 모여 사는데, 마을이 처음 형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800여년 전이다. 들메나무는 마을 한가운데 언덕에 우뚝 솟아 있었다. 줄기의 남쪽 일부가 썩어 커다란 구멍이 뚫리긴 했어도 둘레가 2미터, 높이와 수관 너비는 각각 10미터, 15미터로 여전히 당당한 위풍을 자랑했다. 2015년 이 나무를 조사한 오병훈 한국수생식물연구소 대표는 “나무가 있던 장소, 크기 등 특성을 종합했을 때 이 들메나무의 수령은 300∼400년 정도로 추정된다”며 “이처럼 훌륭한 노거수가 수도권 도시 안에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들메나무를 대장 안동네 주민들은 ‘도당 할아버지 나무’로 기억한다. 도당은 마을의 가장 으뜸 신을 말한다. 들메나무에서 2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굵은 향나무가 있어서 마을 주민들은 들메나무와 향나무를 각각 도당 할아버지 나무, 도당 할머니 나무로 모시고 도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향나무가 20여년 전 베어지고, 마을에도 외지인이 늘면서 도당제는 사라졌지만 들메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강인 대장 안동네 도시개발사업 추진위원장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어렸을 때 도당제가 끝나면 의식에 사용됐던 떡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다”며 “봄여름에 나뭇잎이 화창하게 피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우영우 팽나무’처럼 들메나무를 지킬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갔다. 2018년 말 인접 지역이 정부의 제3신도시 중 한곳(대장신도시)으로 지정되면서 대장 안동네의 개발사업에도 탄력이 붙었다. 사업 시행 예정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최초 토지이용계획안을 만들면서 들메나무가 있던 곳을 주택단지로 만드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들메나무를 지키기 위해 결국 주민들이 나섰다. 이들은 대장 안동네 도시개발사업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들메나무가 있는 땅을 공원이나 녹지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공원이나 녹지로 만들면 들메나무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물론, 이후 시 보호수로 지정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천시는 엘에이치 결정 결과에 따라 들메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할지 아닐지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부천시 도시전략과 관계자는 “들메나무가 있는 곳을 공원이나 녹지로 만들어달라는 주민들의 강한 요구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들메나무 역시 보호수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녹지·공원 지정이 완료되면) 필요한 조처를 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들메나무. 이승욱 기자
다른 각도에서 찍은 들메나무. 이승욱 기자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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