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충청

쌀로 이름난 산골마을 미원, 우리 밀로 ‘빵빵한 변신’

등록 2023-05-24 07:00수정 2023-05-24 18:20

두번째 도약 꿈꾸는 청주 미원마을
김희상 ‘미원 산골 마을 빵’ 대표가 16일 잘 자란 미원 들녘 밀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오윤주 기자
김희상 ‘미원 산골 마을 빵’ 대표가 16일 잘 자란 미원 들녘 밀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오윤주 기자

‘미원 산골 마을 빵’으로 유명해진 미원이 밀 재배로 제2 도약을 꿈꾼다. 16일 찾은 충북 청주시 미원면은 밀 익는 마을이다. 들판 곳곳에서 이삭 팬 밀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 쌀 마을에서 산골 빵 마을로

미원은 청주 도심에서 동쪽으로 20㎞ 남짓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전엔 보은, 괴산, 청주가 만나는 접점으로 교역·교통 중심 구실을 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유흥가가 형성될 정도였다. 인구도 5천~6천명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은 4700명 남짓이다.

사람이 떠나고 마을이 쪼그라들면서 지금은 산과 들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이다. 북쪽 좌구산, 서쪽 인경산, 동쪽 미동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터라 청주보다 300m 남짓 지대가 높다. 대관령 정도는 아니지만 고랭지여서 배추·사과 등이 잘된다. 더불어 달천을 잇는 미원천·용곡천 물이 마르지 않아 농사가 잘됐다. 특히 쌀이 많이 나 ‘쌀안’으로 불렸다.

갓 구워낸 미원 산골 마을 빵. 미원산골마을 빵 제공
갓 구워낸 미원 산골 마을 빵. 미원산골마을 빵 제공

쌀로 이름난 마을에 밀 바람이 분 것은 빵 때문이다. ‘미원 산골 마을 빵’이다. 미원 산골 빵은 2019년 청주시농업기술센터 특산자원융복합기술 지원으로 싹텄다. 당시 지역에서 나는 쌀·사과 등으로 간식을 만들다 우리밀 빵을 만들기로 했다.

농민운동을 하다 20여년 전 귀농한 김희상(50) 동청주살림영농조합법인 대표 등이 아이디어를 냈다. 2009년부터 미원면 용곡리 이장을 맡은 그는 미원 산골 마을 빵 대표다. 김 대표는 “미원이 쌀의 고장이긴 하지만 과거 제법 많은 밀이 재배됐다는 것을 알고, 6차 산업의 하나로 밀 재배와 빵집 운영을 떠올렸다”고 했다.

‘빵 굽는 신부’로 알려진 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신부)한테 매달리듯 졸라 천연 발효종 우리밀 빵 비법을 전수하고 빵집을 열었다. 김 대표 등 농민 3명이 주변 밭에서 밀을 재배해 빵 주재료를 공급하고, 부재료도 대부분 지역 특산물을 썼다. 빵집 개장 첫해인 2020년 매출은 1800만원이었다. 연습하듯 휘뚜루마뚜루 만든 빵을 이장협의회 등 단체·지인 등에게 안겼다.

우리밀 등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이용한 안전한 먹을거리라는 소문이 나면서 알음알음 빵집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2021년 1월 490만원이던 매출은 그해 10월 2천만원까지 늘더니 2021년 한 해 동안 2억원어치를 팔았다. 지난해 매출은 3억1천만원까지 올랐다.

올해는 지난달 말까지 1억8천만원어치를 팔아 연말께 매출 4억원 돌파가 목표다. 김 대표는 “아침에 빵을 구워 내놓으면 오후에 동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에다 재룟값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매출이 꾸준히 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희상 대표(맨왼쪽) 와 미원 산골 마을 빵. 미원산골마을 빵 제공
김희상 대표(맨왼쪽) 와 미원 산골 마을 빵. 미원산골마을 빵 제공

■ 빵, 마을을 바꾸다

빵집은 마을의 변화를 가져왔다. 농사 말고는 엄두내지 못했던 일자리가 생겼다. 빵을 만들고 파는 이들 모두 빵과는 거리가 먼 동네 주민이다. 제빵 4총사 맏이 조향미(50) 실장은 마을 교회 공동체 일을 했고, 김응국(44)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귀농해 텃밭을 일구다 빵을 만든다. 동갑내기 김기현·이선화(42)씨는 두 아이 엄마로, 주부로, 경력 단절 여성으로 살다 빵을 만나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빵집 카페를 운영하는 양시내(42)씨 또한 주부에서 컴백했고, 임일순(65)·박종미(63)씨 또한 집에서 소일하다 빵집에서 찹쌀떡을 빚고, 때론 손님을 맞기도 한다. 양씨는 “결혼과 동시에 일을 놓고 육아에 전념하다 13년 만에 일을 하는데 손님 만나 커피·빵 파는 게 재미있다. 요즘 찾는 이들이 제법 늘었다”고 귀띔했다. 임씨는 “귀농 15년 차인데 농사 말고 다른 일을 할 줄 몰랐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했다.

빵집이 자리를 잡으면서 일자리도 늘었다. 총무·회계 등 사무직원을 채용했고, 주말 손님이 붐빌 때 오는 아르바이트 등까지 포함하면 20여명에 이른다. 김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마을 학생, 주부 등이 일하기도 했다. 빵집이 생긴 뒤 시골에서 농사 말고 다른 직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것을 신기해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마을의 가장 큰 변화는 밀밭이다. 애초 미원의 경작지는 논(1084㏊)보다 밭(1250㏊)이 많아 벼와 더불어 배추·고추·사과 등 재배가 많았다. 최근엔 일교차가 큰 고랭지 특성을 살려 브로콜리·양배추·양상추·적채 등 양채류 재배가 눈에 띄는데, 지난 2021년 16.7㏊에서 올해 22.1㏊로 32.3% 늘었다.

요즘 벼 재배가 줄고, 밀이 늘어나는 현상이 도드라진다. 미원은 2015년 756농가가 벼 587㏊를 재배했지만 지난해 707농가가 479㏊를 재배했다. 7년 사이 벼 재배 면적이 18.4% 줄었지만 밀 재배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0년 0.3㏊에서, 2021년 1㏊, 지난해 10㏊로 늘었으며, 올핸 1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 밀은 미원 산골 빵의 주축인 동청주영농조합법인 소속 주민 조합원 40여명이 재배한다.

밀 재배가 급증한 것은 오롯이 미원 산골 마을 빵의 영향이다. 지난해 밀 60여톤을 생산해 빵집에서 30여톤을 쓰고, 나머지는 충남 아산의 우리밀 제분업체에 납품했다. 지상혁 미원면 산업팀장은 “미원은 일교차가 큰 고랭지인 데다 토질이 좋아 글루텐 함량 등 밀 품질이 빼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미원 산골 빵으로 날개를 단 밀이 지역의 대표 특산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원은 미원 산골 빵 성장을 바탕으로 내년 20㏊, 2025년 30㏊ 등 해마다 밀 재배 면적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미원 산골 빵을 운영하는 동청주살림영농조합법인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진행하는 식량 작물 공동경영체(들녘경영체) 육성 사업에 선정됐다. 이 사업은 밀 등 다양한 작물 재배단지를 집중적으로 지원해 과잉 생산되는 쌀의 적정 생산을 유도하고, 식량 작물 자립과 다양성 등을 위해 추진하는 데, 교육 컨설팅·시설 장비 지원·사업 다각화 등을 지원한다.

미원 밀밭. 미원산골마을 빵 제공
미원 밀밭. 미원산골마을 빵 제공

■ 밀 맥주 마시며 밀밭 관광을

미원 농부들은 산골 빵의 작은 성공을 뛰어넘는 것을 꿈꾼다. 5년 안에 밀 재배 면적을 50~60㏊까지 끌어 올릴 참이다. 이러면 미원 지역 밭 재배 면적의 5%를 밀이 차지하게 되고, 자연스레 미원은 중부권 최대 밀 산지로 도약한다.

미원 농부들의 바람은 때마침 정부의 우리밀 산업 육성 계획과 궤를 같이한다. 통계청의 우리밀 생산 통계를 보면, 1980년 2만7868㏊에서 9만1957톤까지 생산했지만 이후 쌀 증산 등의 영향으로 1985년 3070㏊, 1만517톤으로 쪼그라드는 등 밀 생산이 급감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2월 ‘밀산업육성법’을 제정하고, 1차(2021~2025년) 밀 산업 육성기본계획을 세워 2025년 밀 자급률 5% 달성을 위해 정책·재정 지원에 나섰다. 이에 지난 2020년 0.8%이던 밀 자급률은 지난해 1.4%에 이어 올핸 2.2%까지 오를 전망이다. 밀 재배 면적은 2020년 5224㏊에서 지난해 8259㏊로 늘었으며, 밀 생산량도 2020년 1만6985톤에서 지난해 3만3천톤으로 크게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20년 34억원이던 밀 산업 육성 예산을 올해 403억원으로 늘리고, 밀 전문생산단지도 73곳까지 확대할 참이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밀가루값 폭등 홍역을 치른 정부는 지난해 6천톤이던 우리밀 계약재배 물량을 8천톤으로 늘리고, 정부 비축도 지난해 1만6561톤에서 올해 2만톤으로 늘릴 참이다.

미원 농부들은 전남 함평, 경남 합천·함양 등 성공적인 우리밀 생산단지를 견학하는 등 밀 기반 부농의 꿈을 키운다. 김 대표는 “전통적인 벼농사만으로는 농촌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생각에 밀 농사로 방향을 틀었는데 정부 방침과 닮아 기대가 크다”며 “계획대로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 밀밭 관광, 제분·제과·제면, 밀맥주 제조 등까지 확대하는 등 농업의 체질 개선까지 시도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김포 아파트서 1m 도마뱀 탈출…“발견 즉시 119 신고” 1.

김포 아파트서 1m 도마뱀 탈출…“발견 즉시 119 신고”

마산어시장 옮겨놓은 ‘통술집’, 밥 낄 자리가 없네 2.

마산어시장 옮겨놓은 ‘통술집’, 밥 낄 자리가 없네

군산 35톤급 어선 전복…구조된 8명 중 3명 의식불명 3.

군산 35톤급 어선 전복…구조된 8명 중 3명 의식불명

트럼프 암살 시도한 ‘백인 남성’ 지지자…“당신은 더 나빠졌다” 4.

트럼프 암살 시도한 ‘백인 남성’ 지지자…“당신은 더 나빠졌다”

제주 멸고국수·나주 콩국수 원조 식당 찾아가 볼까 5.

제주 멸고국수·나주 콩국수 원조 식당 찾아가 볼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