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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원흥이방죽 살리기 20년 “두꺼비가 사람을 살렸다”

등록 2023-06-15 05:00수정 2023-06-15 07:48

원흥이방죽. 오윤주 기자
원흥이방죽. 오윤주 기자

창을 열면 밝은 빛, 정겨운 소리, 맑은 바람, 좋은 기운이 스며들고, 문을 열면 마실 다니는 이웃이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아파트 마을이 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에 있는 원흥이방죽 두꺼비생태마을이다. 겉에서 보면 법원·검찰청이 있고, 아파트 단지 8곳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빌딩·상가 등이 즐비한 영락없는 도심이다. 애초 이곳은 ‘산남3지구’로 불리던 신도시였지만, 지금은 ‘두꺼비마을’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지난 30일 오후 두꺼비마을을 찾았다.

삼보일배로 지켜낸 마을

두꺼비마을의 나이는 올해 꼭 스무살이다. 길지 않은 역사지만, 파란만장한 사연을 안고 있다. 마을은 청주 남쪽 구룡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원흥이방죽이 품었다가 내려보내는 마르지 않는 물길을 따라 논밭이 이어졌다. 하지만 2003년 ‘산남3지구’ 택지개발이 시작되면서 마을은 격랑에 휩싸였다.

2003년 3월 어린이들이 내건 펼침막.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2003년 3월 어린이들이 내건 펼침막.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2003년 3월 어린이들이 내건 펼침막.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2003년 3월 어린이들이 내건 펼침막.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2003년 3월 어린이들이 원흥이방죽에 설치한 펼침막을 시민·어린이 등이 둘러보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2003년 3월 어린이들이 원흥이방죽에 설치한 펼침막을 시민·어린이 등이 둘러보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착공을 코앞에 둔 그해 3월29일 환경단체 ‘생태교육연구소 터’의 ‘터사랑 어린이 자연학교’가 원흥이방죽을 탐방했다. 어린이들은 두꺼비 집단 서식을 확인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원흥이방죽의 두꺼비를 살려주세요’라고 쓴 작은 펼침막을 방죽에 걸었다. 이후 충북환경운동연합 등 환경·시민단체 등이 나서고, 마을 주민들이 결집하면서 원흥이방죽과 두꺼비 지키기 운동이 시작됐다. 생태교육연구소 터의 신제인 소장은 “원흥이방죽에 두꺼비가 집단 서식한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방죽을 찾아 두꺼비를 살려달라고 세상에 외치면서 두꺼비 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으로 번졌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2003년 5월 원흥이방죽의 두꺼비 집단 이동을 둘러보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시민들이 2003년 5월 원흥이방죽의 두꺼비 집단 이동을 둘러보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이후 방죽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시민들은 몸을 키운 새끼 두꺼비들이 생활 공간인 구룡산으로 집단 이동하는 장관을 목격했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원흥이 두꺼비마을 생태문화보전 시민대책위원회’(원흥이 대책위)를 꾸려 두꺼비 서식지 보존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서명운동에 나섰다. 시민 5만여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택지개발에 나선 한국토지공사는 공사를 강행했다. ‘헌 집’ 같은 두꺼비 보금자리보다 5천여가구 아파트로 이뤄진 ‘새집’이 낫다고 본 것이다. 1년 넘게 이어진 긴 싸움에도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불침번 서듯 새벽부터 인간 띠를 만들어 중장비 진입을 막았다. 2004년 5월 원흥이 대책위를 이끌던 시민·종교대표 13명은 원흥이방죽에서 충북도청에 이르는 4.5㎞ 구간을 ‘삼보일배’하며 원흥이방죽 보존과 생태공원 조성을 촉구했다. 이어 44개 환경·시민단체들이 ‘원흥이 생명평화회의’를 꾸리고 충북도청과 청와대 등에서 3천배를 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하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시민단체 대표들은 릴레이 단식으로 맞섰다.

충북지역 환경·시민단체와 시민이 2004년 청와대 앞에서 원흥이방죽과 두꺼비 서식지 보존을 바라는 3천배를 하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충북지역 환경·시민단체와 시민이 2004년 청와대 앞에서 원흥이방죽과 두꺼비 서식지 보존을 바라는 3천배를 하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충북지역 환경·시민단체와 시민이 2004년 원흥이방죽과 두꺼비 서식지 보존을 바라는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충북지역 환경·시민단체와 시민이 2004년 원흥이방죽과 두꺼비 서식지 보존을 바라는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제공

평행선을 달리던 논의는 2004년 11월 충청북도의 중재로 전환점을 맞았다. 원흥이 생명평화회의와 한국토지공사가 원흥이방죽 3만9천여㎡ 원형 보존, 두꺼비 이동 생태통로·대체습지 확보, 구룡산 일대 생태보존구역 설치, 생태공원 조성 등에 합의한 것이다. 원흥이방죽 두꺼비 살리기 운동을 시작하고 20개월 만이었다. 염우 풀꿈환경재단 이사는 “원흥이방죽 생태보존 운동은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한 시민운동으로, 지역 환경·시민 운동의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원흥이방죽과 마을을 지키는 300살 느티나무. 오윤주 기자
원흥이방죽과 마을을 지키는 300살 느티나무. 오윤주 기자

도심 속 자연사박물관

원흥이방죽은 시민 쉼터이면서 생태교육 공간이다. 방죽 들머리엔 ‘두꺼비마을 수호 나무’로 불리는 300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다. 환경단체 ‘두꺼비친구들’은 이 나무를 시민 보호수 1호로 지정했다. 이 나무 역시 사라질 뻔했지만 살아남았다.

원흥이방죽은 현재 국내 최대 두꺼비 서식 습지다. 두꺼비뿐 아니라 맹꽁이, 참개구리와 1급수 지표종인 가재 등이 서식한다. 아파트·상가 등이 즐비한 도심에 자리 잡고 있는데도, 고라니와 천연기념물 새매, 백로, 황조롱이 등 조류 20여종과 다양한 수생생물을 볼 수 있다. 주민과 환경단체는 반려동물로 기르다 방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줄무늬목거북 등 생태교란종 퇴치 운동을 주기적으로 벌인다.

두꺼비생태문화관. 오윤주 기자
두꺼비생태문화관. 오윤주 기자

2009년 3월 원흥이방죽 들머리에 두꺼비생태문화관이 들어선 뒤로는 국제 자원봉사 모임 ‘국제워크캠프기구’ 소속 청년들이 원흥이방죽을 찾는 등 해마다 나라 안팎에서 2만~3만여명이 다녀가고 있다. 시민들은 2009년 5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함께 6천만원을 들여 두꺼비 핵심 서식지 1009㎡를 사들인 데 이어, 2019년엔 도시공원 민간개발 특례사업에 맞서 구룡산 일대 보호 운동에 나서며 관심을 모았다.

아쉬움도 있다. 생태공원의 관리 주체가 석연찮은 이유로 두꺼비친구들에서 청주시 직영으로 전환되면서, 장소가 갖고 있던 특유의 활력과 분위기가 사라진 것이다. 박완희 청주시의회 의원은 “원흥이방죽과 두꺼비생태공원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쉬고, 놀고, 머물고, 공감하는 공간인데 3년 전부터 청주시가 직영하면서 관리·운영 등이 아쉽다”며 “전국에서 유일한 양서류 생태공원인 두꺼비생태공원을 시민들이 제대로 향유할 수 있게 민간에 운영권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원흥이방죽 살리기 안내 표지판. 오윤주 기자
원흥이방죽 살리기 안내 표지판. 오윤주 기자

원흥이방죽 두꺼비 안내 표지판. 오윤주 기자
원흥이방죽 두꺼비 안내 표지판. 오윤주 기자

두꺼비가 사람을 살렸다

이곳에서 눈여겨볼 곳은 생태공원 말고 또 있다. ‘두꺼비생태마을 공동체’다. 공동체에는 주변 아파트 단지 6곳의 주민협의회, 상가번영회 ‘산남오너즈’, 작은도서관협의회, 산남동 마을자율공동체, 산남행복교육공동체 등이 함께한다. 청주지역 농민이 생산한 로컬푸드를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두꺼비살림, 열두광주리협동조합·넷제로두꺼비살림 등 사회적경제 단체와 충북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마을엔(N)청소년, 생태교육연구소 터 등 시민사회 단체도 참여한다. 신경아 두꺼비친구들 사무처장은 “두꺼비 보존이라는 환경운동에서 출발해 주민, 상인, 청소년, 시민사회 단체, 사회적경제 단체 등이 공동체를 이룬 곳은 아마 전국에서 유일할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두꺼비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은 월간 <두꺼비마을신문>이다. 2009년 1월15일 창간해 지난달 231호를 발행했다. 애초 12면 타블로이드 형태로 5천부를 만들어 아파트와 상가 등에 배포했다. 지금은 24면으로 증면했고, 부수도 8천부로 늘었다. 두꺼비마을뿐 아니라 이웃 분평동·남이면 등에서도 독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조현국 <두꺼비마을신문> 편집인 겸 편집장은 “두꺼비마을 공동체를 20년 동안 끌어온 힘 가운데 하나가 우리 신문이라고 자부한다”며 “요즘 종이신문 시장이 많이 위축됐다고 하지만 우리 마을 신문은 조금씩 성장한다. 자신과 이웃의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두꺼비를 살린 게 아니라 두꺼비가 사람을 살렸죠.” 두꺼비생태마을에서 가톨릭농민회 우리농 매장을 운영하는 김병의씨 말이다. 그는 “삭막한 도시에 살면서 이런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행운이자 행복”이라며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하게 만든 두꺼비가 지금도 너무 고맙다”고 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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