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한 커피숍 안에 설치된 일회용컵 반납 기계 모습. 최예린 기자
“환경 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해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참여했는데, 이게 뭡니까? 정부 말 믿고 참여한 사람만 바보된 것 같잖아요.”
지난 27일 세종시 보람동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주문을 받던 업주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해 묻자 한숨부터 쉬었다. 이 커피숍은 지난해 12월2일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 일회용컵에 담아 음료를 팔 때 보증금 300원을 함께 받았다. 보증금제를 보이콧하는 주변의 다른 커피숍에 손님을 뺏기는 상황도 감수했다. 환경을 위한다는 제도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다른 지역에서는 시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선 다리 힘이 풀렸다고 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일회용컵에 담아 파는 음료 가격에 자원순환보증금을 포함하고, 소비자가 사용한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점포를 100곳 이상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음료·제과제빵·패스트푸드 업종이 대상이다. 애초 환경부는 지난해 6월부터 전국에서 동시에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시행을 3주 앞두고 도입 시기를 6개월 미룬 뒤 지난해 12월2일 세종·제주에서만 먼저 시행했다. 나머지 지역은 환경부 고시에 따라 시행일로부터 3년 안에 보증금제에 동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예정대로 전국에서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8월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는 내용의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발의한 뒤 환경부는 “전국 시행 여부는 검토 중”이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 3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하는 시·도에서 관할 지역 내 보증금제 적용 대상을 조례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후속 조처는 진행하고 있지 않다. 환경부가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철회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환경부 일회용품대책추진단 관계자는 “지자체 자율로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세종과 제주 사례를 모니터링한 뒤 (전국 시행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국 시행이 불투명해지면서 먼저 제도를 시작한 세종과 제주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세종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섬인 제주와 달리 세종의 경우 대전·청주 등 인근 시·도가 보증금제를 안 하고 있어, 업주도 소비자도 반발이 더 크다. 손님이 커피를 사서 대전으로 갈 건데 돌려받지도 못할 보증금을 꼭 내야 하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전국 시행을 안 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나마 참여하던 매장들도 이탈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97% 가까운 참여율을 보이는 제주 역시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제주도의 경우 지난 10월 기준 대상 매장 502곳 중 486곳이 보증금제에 참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정부의 불분명한 태도 속에 일회용컵 규제 완화까지 겹치면서 보이콧하는 매장이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제주도 컵보증금운영팀 관계자는 “전국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도 필요하지만, 일부 프랜차이즈 매장만 보증금제 대상으로 해 발생하는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지자체별 대상을 조정할 수 있게 하는 시행령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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