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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법정서 꾸벅 졸다 “가슴 답답”…아무 말 없이 떠났다

등록 2021-08-09 22:24수정 2021-08-10 02:00

전씨, 사자명예훼손 항소심 출석
20여분 만에 호흡곤란 호소…방청석 야유
5·18 유족 “한마디라도 사죄를”
고 조비오 신부 조카 “전씨 태도 분노”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전두환씨가 항소심 인정신문을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광주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전두환씨가 항소심 인정신문을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광주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를 찾은 전두환(90)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5·18 때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한마디라도 미안하다고 하라”며 울부짖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9일 오후 2시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형사1부(재판장 김재근) 심리로 열린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 항소심에 처음으로 출석했다. 1심 인정신문, 선고공판 등에 이은 네번째 출석이다.

이날 아침 8시55분 회색 여름 양복에 옅은 분홍 넥타이 차림으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 낮 12시43분 광주지법에 도착한 전씨는, 오후 1시58분 법정에 들어선 뒤 방청석과 피고인석을 한번 살펴본 뒤 자리에 앉았다. 전씨 왼쪽으로 부인 이순자(83)씨도 동석했다.

재판장은 인정신문을 열어 전씨에게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본적을 물어봤다. 전씨는 헤드셋을 쓰고도 판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부인 이씨의 도움으로 답변했다. 전씨는 손을 다리에 모은 채 정면을 주시하며 지난 공판 내용을 들려주는 판사의 말을 경청했다.

전씨는 재판 시작 10분 만에 지난번 재판에서처럼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하며 조는 모습을 보였다. 2시20분께에는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부인 이씨는 “남편이 식사를 못 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전씨를 퇴장시킨 뒤 재판을 진행했다. 방청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전씨는 재판이 마무리되는 오후 2시27분께 법정에 다시 들어섰다.

이날 재판에서 재판부는 전씨 쪽이 신청한 증인 5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506항공대 소속 조종사 4명과 전씨의 회고록 집필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다. 장사복 전 전투교육사령부 참모장(준장)과 정웅 전 31사단장 증인신청과 현장검증 등은 기각됐다.

앞서 지난달 5일 항소심 재판부는 전씨가 항소심에 출석하지 않자 “불출석에 따른 불이익으로 증거신청을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씨와 함께 법정에서 퇴장하던 이씨는 그동안의 불출석 이유가 담긴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아들을 잃은 이근례씨가 전두환씨에게 사죄를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5·18민주화운동 당시 아들을 잃은 이근례씨가 전두환씨에게 사죄를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피해자 쪽 법률 대리인 김정호 변호사는 “공식 지휘계통에 나오지 않는 506항공대는 국방부 특조위 조사 등에서 5월21일 오전 10시 광주에 투입된 것으로 나온다. 이들 조종사 증인은 헬기사격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는데 민 전 비서관은 전두환의 분신 같은 존재라 진실을 호도할 가능성이 커 재판부의 적절한 소송 지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뒤 경찰 안내를 받아 광주지법을 떠나는 전씨를 향해 5·18 희생자 유족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5·18 때 아들 권호영(당시 19살)씨를 잃은 이근례(80)씨는 “사과 한마디만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며 호소했다.

조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광주시민과 사법부를 무시하는 전씨의 태도에 또다시 분노를 느끼지만 법정에 다시 세웠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전씨는 거짓으로 일관하지 말고 사죄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30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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