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붙잡힌 광주시민이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5·18기념재단 제공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숨지거나 다친 유공자와 유족 1000여명에게 국가가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고 법원이 판결했지만, 정부가 불복하고 항소했다.
24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정부(법무부·국방부)는 “국가, 5·18 유공자 1018명에 위자료 476억원 지급하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단에 불복하고 이날 오전 항소장을 제출했다.
구체적인 항소 내용이 확인되진 않았지만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위자료가 과다하니 감액해달라”고 주장했고, 일부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공자와 유족들은 이러한 재판 내용을 토대로 항소이유도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2021년 11월 광주지법에서 진행된 위자료 재판에서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이듬해 5월 광주고법은 정부의 항소를 기각한 바 있다.
앞서 진행된 다른 재판들에서 일부 유족의 고유위자료 채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했거나, 불법행위 당시에는 가족관계에 있지 않고 이후에 가족관계를 형성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선 이러한 경우를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기 때문에 유공자와 유족들은 정부의 불복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1심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기존에 받았던 형사보상금도 위자료에서 공제됐고, 국가의 불법행위 여부와 손해배상 범위에 대해 2년 동안 충분히 다투었기 때문에 2심으로 끌고 갈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유가족으로 소송에 참여한 박상현씨는 “국가 폭력으로 인해 시민들이 입은 피해를 이미 국가가 조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재판부가 충분히 심리하고 판결이 나왔는데 한국 정부가 불복하고 항소할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참담함을 느낀다”며 “5·18 민주화 운동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를 망각하고, 단순하게 위자료 금액을 다투는 평범한 사건으로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판결을 내린 재판부도 머쓱한 상황이 됐다. 지난 8일 법원은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면서 “유사한 선행 국가배상 청구 사건에서 인정된 위자료의 액수, 형사보상금의 액수, 기존 보상에서 누락된 위자료의 지급으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 보상법)의 입법 취지를 달성할 필요성, 원고들 개개인의 피해 정도 등을 종합했다”며 “제반 사정을 모두 고려하지 못한 미흡함이 있지만 (5·18)보상법에서 빠졌던 위자료가 기준을 가지고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거나,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자료를 갖고 있는 형사보상금 지급 여부 관련 자료를 원고들에게 제출하라고 주장하는 등 재판을 지연시키면서 유공자와 유족들의 원망을 샀다. 1심 결과가 나오는데 2년의 시간이 걸린 이유다.
법무부는 “현재 다수의 5·18 민주화 운동 관련 국가배상소송이 법원에 제기돼 있고, 향후에도 추가로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며 “본건 판결은 위자료의 산정 방식이나 기준에 관하여 유사 사건들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선례이므로 상급심을 통해 사법부의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정립하고 향후 일관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항소했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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