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 10·19사건 73주기 위령제와 추념식이 19일 전남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에서 경건하게 진행됐다. 안관옥 기자
“비극은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여순사건 73주년을 맞아 19일 전남 여수에서는 특별법 제정 이후 처음 여는 위령제와 추념식이 경건하게 치러지는 등 추모 분위기가 고조됐다.
전남도와 여수·순천시 등 시·군 지자체 6곳은 이날 오전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에서 ‘여순 10·19, 진실의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주제로 여순사건 73주기 합동 위령제와 추념식을 열었다.
이날 위령제는 1분간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이렌을 울린 데 이어 진혼무 ‘구음살풀이’, 유족의 편지 낭독, 여수합창단의 ‘바다의 노래’ 공연, 영화 ‘동백’의 줄거리 상영 순으로 이어졌다. 유족 2세인 서영노씨는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향해 “국가의 서슬 퍼런 폭력과 이웃의 손가락총질, 이어진 연좌제에 얼마나 아프셨느냐”며 “이제 고통을 내려놓고 환하게 진실이 밝혀진 여수의 봄날에 손잡고 함께 구경 오시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진행된 추념식에는 여순사건 유족과 제주4·3 유족,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근식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김영록 전남지사 등이 참석했다. 추념식은 사건의 발생·영향과 특별법 제정 과정을 담은 영상 상영으로 시작해 헌화와 분향, 추념사, 추모극 ‘눈물꽃’ 공연 등으로 이어졌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영상을 통해 “여순사건은 현대사에서 아직 풀어내지 못한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며 “여순사건이 상처를 딩고 평화와 상생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고흥 대서 출신 아버지와 보성 벌교 출신 어머니한테 전남 동부지역에서는 6·25보다 여순이 더 무서웠다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며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내년에는 민주정부의 새로운 대통령을 모시고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1기 활동 때 여순사건과 관련해 730건을 처리하고 1273명의 피해사실을 확인했지만, 전모를 드러내는 데는 미진했다”며 “지난해 12월부터 695건의 피해신고가 다시 접수된 상황인 만큼 진실을 온전하게 규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19일 열린 여순사건 73주기 추념식에서 유족 대표들이 희생자를 영면을 기원하며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성태 여순사건유족협의회 대표는 무대에 올라 큰절을 올리며 희생자와 유족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한 데 대해 감사했다. 박 대표는 “이 사건이 아직도 ‘반란사건’이나 ‘특정지역사건’으로 잘못 알려져 안타깝다”며 “진실의 꽃이 도중에 지지 않고 만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여수에선 이날 각종 기억행사가 다채롭게 이어져 특별법 제정 이후 달라진 지역 분위기를 보여줬다.
여수시는 이날 좌익인사 처형장소였던 비극적 공간인 오동도에 여순사건 기념관을 열었다. 서양화가 박금만 작가는 이날 이순신광장에서 여순사건 역사화 사진 24점을 선보였다. 강종열 화백도 이날부터 한 달 동안 여수엑스포 전시장에서 여순사건 작품 100점을 전시한다. 여수시립도서관은 29일까지 여순사건 자료 전시전을 열고, 여수교향악단은 이날 저녁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창작오페라 ‘1948년 침묵’을 무대에 올렸다.
순천시도 이날 이순신광장에서 여순역사만화 ‘동백꽃 필 때까지’의 주요 장면 원화를 액자로 만들어 역사의 진실과 아픔을 알리는 전시를 진행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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