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27일 오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와 차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1년여 만에 광주 법정을 다시 찾은 전두환(89)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의 쟁점은 크게 두가지다. 헬기 사격이 실제로 있었는지와 전씨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자서전에서 조 신부를 비난했는지 여부다. 5·18 때 헬기 사격이 있었고 전씨가 이를 알고 있었다면 조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헬기 사격이 없었다면 무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씨는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고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은 “문학적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전씨 재판은 형식적으로는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여부를 다루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체 규명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40년 동안 밝혀지지 않고 있는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 여부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전씨 등 신군부는 계엄군의 발포는 시민군에 맞선 ‘자위권 발동’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민군과 충돌 상황에서 이뤄진 지상군의 발포와 달리 공중에서 이뤄지는 일방적 공격인 헬기 사격은 자위권 발동과는 거리가 멀어, 헬기 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될 경우 신군부가 주장해온 논리가 무너진다.
2018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980년 5월21일과 5월27일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조 신부가 목격했던 5월21일 헬기 사격이 계엄군의 잔학성과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특조위는 5월21일 계엄사령부가 전투병과교육사령부에 내린 헬기 사격 지침 등 군 문서와, 무장 헬기가 광주에 출동했다는 항공부대 관계자 증언, 목격자, 전일빌딩 총탄 자국 등을 근거로 들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광주시내 상공에 군 헬기가 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는 “전시에나 가능한 헬기 사격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발포를 했다는 자위권 발동 논리를 일거에 허무는 증거다. 21일 헬기 사격은 사전에 헬기 투입 계획을 세우고 무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계엄군 수뇌부 차원의) 발포 명령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많은 증언과 더불어 헬기 사격 관련 작전 지침과 사전 계획 문건까지 나왔지만, 실제 사격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은 탓에 실제 헬기 사격이 이뤄졌느냐를 두고 법리 다툼이 치열한 상황이다. 재판에 출석한 헬기 조종사들은 “무장한 채 출격은 했지만 사격은 하지 않았다”는 진술로 일관하며 헬기 사격을 부인하고 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한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전두환이 군과 국가를 장악했는데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남겨놓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검찰은 전씨의 명예훼손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논리로 접근해야 하는데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6일 <한겨레>가 입수한 ‘전교사 충정작전계획’에는 계엄사령부가 1980년 5월27일 광주 일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광주 재진입 작전(충정작전)에 500MD 무장 헬기 5대를 편성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5·18 진압 작전 전반에 무장 헬기가 투입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다.
1980년 5·18 당시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 주변에 계엄군 헬기가 날고 있는 모습. 5·18기념재단 제공
검찰은 헬기 사격 입증을 위해 관련 전문가와 목격자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전일빌딩 총탄 자국을 조사한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총기연구실장과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 헬기 사격을 목격한 데이비드 돌린저 전 미국평화봉사단원 등이다. 재판부는 직권으로 국방부 5·18특조위 조사결과보고서 작성자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기존대로 3주에 한번 재판이 열린다고 가정했을 때 1심 선고는 올해 9월쯤에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이 끝날 때까지 판단을 미룰 가능성도 있다.
앞서 2017년 4월 5·18기념재단과 유족은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전씨를 형사고소했고 광주지검은 2018년 5월 전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에 참석하지 않던 전씨는 지난해 1월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하고 나서야 법원에 출석했다. 이후 또다시 건강 문제를 이유로 불출석하다 재판장이 바뀌면서 피고인 신원을 다시 확인하는 인정신문이 결정되자 다시 법정에 불려나왔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