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제주도지사가 임명하기에 앞서 재단 이사회의 의견 수렴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4·3평화재단 조례 전부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의회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강철남)는 지난 12일 오후 제423회 임시회 회기 중 1차 회의를 열어 제주도가 제출한 ‘재단법인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 개정 조례안’을 수정 가결했다고 13일 밝혔다.
논란의 기폭제가 됐던 이사장 임명과 관련해 제주도안은 이사장을 도지사가 임명하기 전에 재단 이사회에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했으나, 수정안은 ‘이사회의 의견을 들은 후’ 임명하도록 했다. 재단 이사회 쪽은 ‘이사회의 의결’을 요구했으나 의견 수렴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조례안은 또 4·3의 정치화 및 독립성과 관련해 정치적 중립성과 인사의 독립성 유지를 명문화했으며, 재단 운영과 관련해서도 “도지사는 재단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밖에 당연직 이사는 부지사에서 담당 실·국장으로 바뀌고, 도의회 사무처장과 도교육청 담당 실·국장을 포함해 3명으로 늘리는 대신 이사 정원은 12명 이내에서 15명 이내로 증원했다.
제주4·3평화재단 조례 개정안은 지난 40여일 이상 ‘4·3의 정치화’와 ‘재단의 독립성’을 놓고 제주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조례 개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주도가 재단 이사회 등과는 협의 없이 밀어붙이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애초 도는 지난 10월30일 4·3관련 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샀던 지방공기업평가원의 컨설팅 결과를 내세워 이사장과 이사에 대한 임명권을 도지사가 행사하도록 조례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지난 12일 오후 회의를 열고 제주4·3평화재단 조례 전부 개정조례안을 수정 가결했다. 제주도의회 제공
이에 반발해 고희범 이사장이 “조례 개정안이 4·3의 정치화를 부르고 정쟁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전격 사퇴했다. 그러나 제주도는 지난달 2일 조례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이 과정에서 같은 달 8일 오영훈 지사와 함께 제주평화인권헌장 제정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강우일 주교가 사퇴하면서 재단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졌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일부 4·3단체들은 조례 개정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지만, 일부 단체들은 내지 않는 등 제주도가 조례개정안을 통해 4·3진영을 갈라치기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5·18재단 등 전국의 과거사 기념재단 등도 제주도의 조례개정안에 반발했다.
이처럼 재단 조례 개정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지자 제주도는 수정안을 지난달 30일 냈지만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도의회는 제주도와 재단 이사회, 유족회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며 이견을 조율했다. 이번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도 제주도의 밀어붙이기식 행정행위와 소통 부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한동수 의원은 4·3평화재단보다 낮은 등급을 받은 출자출연기관을 예로 들며 “재단에 대해서만 성과와 책임경영, 투명성 강화를 이야기하는지 논리적으로 납득가질 않는다”고 했다. 하성용 의원도 “일부 문제는 어느 기관이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경영평가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운영이나 경영이 잘 이뤄지고 있다. 이사장을 도지사가 임명하면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느냐”고 했다.
현길호 의원은 “개정안이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제주도의 입장으로 안이 제출됐다. 이번 회기에 반드시 이 조례안이 통과돼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강철남 위원장도 “최근 한 달여 동안 이번 상황을 지켜보면서 집행부의 엄청난 조급함이 느껴진다. 충분히 숙고하지 않고 개정안을 의회로 넘겨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개정안은 오는 15일 본회의에 상정된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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