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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 선물 받은 기적의 광부 “안전한 일터 위한 일 하겠다”

등록 2022-11-11 14:46수정 2022-11-11 21:05

기자들 향해 “믹스커피는요?” 농담도
“용감한 줄 알고 살았는데 많이 울었다
동료가 침착하게 신경 써줘서 큰 위안
두 번 다시 광산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서 일하다 고립돼 221시간 만에 구조된 작업반장 박정하씨가 11일 오전 안동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손을 들어보이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서 일하다 고립돼 221시간 만에 구조된 작업반장 박정하씨가 11일 오전 안동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손을 들어보이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 막 태어나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 애가 된 기분입니다.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볼까 합니다.”

11일 오전 10시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로비에 봉화 생환 광부 박정하(62)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박수가 터졌다.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나온 입원 환자들과 방문객들이 그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박씨는 거듭 감사함을 표시한 뒤 준비해온 회견을 시작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저녁 6시께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아연광산 붕괴 사고로 매몰됐던 작업반장 박씨와 보조작업자 박아무개(56)씨 등 광부 2명이 붕괴사고 221시간 만인 지난 4일 밤 11시3분 극적으로 구조됐다.

박씨는 갱 안에서 버틸 수 있게 해준 믹스 커피 이야기를 꺼내며 “기자님들 이렇게 많이 오셨는데 아무도 노란 봉지 믹스 커피를 안 가지고 오셨어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박씨는 이철우 경북지사가 선물한 믹스 커피 한 박스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서 일하다 고립돼 221시간 만에 구조된 작업반장 박정하씨가 11일 오전 안동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이철우 경북지사로에게 선물받은 믹스 커피를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서 일하다 고립돼 221시간 만에 구조된 작업반장 박정하씨가 11일 오전 안동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이철우 경북지사로에게 선물받은 믹스 커피를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박씨는 이날 퇴원해 자택이 있는 강원도 정선으로 돌아간 뒤, 내일께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부모님 묘소를 찾을 예정이다. 가족들과 함께 울진 바다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박씨와 함께 고립된 50대 광부가 구조된 뒤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울진군에서 숙소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박씨는 광산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조금 더 제가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제일 소중한 게 가족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돼 가족들과 항상 움직이려고 한다”며 “지금 광부들이 하는 환경이 80년대 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전국의 광산에서 종사하는 광부들이 조금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회단체와 연대해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다시는 광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박씨는 광산 안전 문제에 쓴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이번 사고가 난 현장 역시 폐갱도로 광물 찌꺼기를 버렸던 것이 펄이 되어 쏟아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갱내에서 발생한 광미(광물 찌꺼기)를 밖으로 꺼내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갱도에 넣어요. 이 방법을 정부도 권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여기서 나온 슬러지만큼은 다시 넣으면 안 된다고 얘기해왔어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계기관에도 아주 강력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몰사고로 221시간 만에 고립됐다가 구조된 작업반장 박정하(62)씨가 11일 오전 안동병원에서 퇴원했다. 사진은 퇴원 기자회견을 위해 박씨가 직접 작성한 감사 인사 글. 박정하씨 가족 제공, 연합뉴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구조작업 내내 현장을 지켰던 박씨의 아들 근형(42)씨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라북도 익산에 사는 그는 경상북도에 올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많은 경북도민이 저를 알아보시고,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럴 때마다 ‘아직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최근 이태원 사고로 정치권에서 서로 싸우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셔서 많은 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함께 고립됐던 보조작업자 50대 박씨는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기자회견 전 이철우 지사와 면담에서 소회를 전했다. 그는 “평소 용감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았는데, 이번 사고로 정말 많이 울었다. 공포심 때문에 발걸음 하나 뗄 수 없을 만큼 무서웠다. 작업반장이 침착하게 신경 써줘서 굉장히 위안을 얻었다. 두 번 다시는 (광산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7일 경찰,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현장감식을 벌이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업체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으며, 폐기물관리법 위반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관리소은 광산안전법 위반,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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