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돼 나라가 좌파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저지하겠다.”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살해하려 한 김아무개(67)씨가 범행 전 작성했다고 경찰이 전한 글의 일부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반복했다고 한다.
“구국 열망과 행동의 마중물 되고자”
경찰이 브리핑을 통해 전한 김씨의 행적과 발언은 그릇된 정치적 신념에 근거해 야당 대표에게 흉기 공격을 가한 ‘확신범’의 그것에 가깝다. 전반적 내용과 빈번하게 등장하는 표현들이 주로 우파 정치 유튜브나 태극기 집회에서 유통되는 것들이다. 김씨는 지난해 4월부터 몇차례 수정을 거쳐 ‘남기는 말’을 작성했다. 7446자 분량의 이 글에는 “사법부 내 종북세력으로 인해 이 대표에 대한 재판이 지연돼 그를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4월 총선에 공천권을 행사하면, 좌경화된 세력에게 국회가 넘어간다. 나아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돼 나라가 좌파세력에 넘어가게 되니, 이를 저지하겠다. 이런 내 의지를 알려 자유인들의 구국 열망과 행동에 마중물이 되고자, 실행에 옮기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디지털 포렌식 조사, 참고인 진술, 프로파일러 조사 등을 종합해 김씨가 주관적인 정치적 신념으로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범행 결심한 지난해 봄 민주당 입당
범행 준비는 치밀했다. 김씨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1년 남겨둔 지난해 4월 인터넷에서 등산용 칼을 구입해 칼등과 칼날을 예리하게 갈았다. 범행이 용이하도록 자루 부분도 개조했다. 이 대표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내가 이재명’ ‘총선 승리 200석’ 등의 문구를 적은 손펼침막과 왕관 모양 머리띠까지 만들었다. 김씨는 이 무렵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후 지난해 6월부터 개조한 흉기를 가방 안에 담고 경남 김해 봉하마을, 양산 평산마을 등을 방문한 이 대표를 다섯차례나 따라다녔다. 이 대표 동선은 민주당 누리집을 통해 파악했다고 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대중교통은 현금으로만 이용했다. 범행 전날인 지난 1일에는 추적을 피하려고 휴대전화의 유심(USIM) 칩을 제거한 뒤 현금으로만 차비를 지불하며 케이티엑스(KTX)와 도시철도, 택시, 버스 등을 타고 이동했다.
“공범이나 배후세력은 없어 보여”
김씨는 범행 전 자신을 돕기로 한 70대 남성 ㄱ씨에게 “성공하면 남기는 글 7통을 가족 등에게 보내고 실패하면 2개만 가족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ㄱ씨는 김씨의 범행 직후 언론사 등에 보내려고 한 5통을 찢어서 폐기했고, 나머지 2통은 김씨 가족에게 보내려고 했다. 경찰은 ㄱ씨를 지난 7일 저녁 긴급체포해 가지고 있던 글 2통을 압수했다. ㄱ씨는 김씨 범행을 도운 혐의(살인미수 방조)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범행 전 혼자 돌아다닌 점과 행적 수사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범행을 함께 모의한 공동정범이나 배후세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동기·배후 등 재수사해야”
민주당은 경찰 수사 결과에 대해 공범과 배후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재수사를 요구했다. 전현희 민주당 당대표정치테러대책위원장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2차 대책회의에서 “테러의 동기나 공범 여부, 배후 등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사건의 본질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과 수사당국에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재수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영동 임재우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