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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너와 만난 것은 기적 같은 인연이야!

등록 2021-07-16 04:59수정 2021-07-16 09:49

[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꽃님 지음/문학동네(2018)

“과연 스포일러 없이 너를 소개할 수 있을까. 되도록 결론은 아껴두고 말해볼게, 은유야!” 책을 덮고 잠시 멍하니 앉아 혼잣말을 했다. 주인공 은유가 어찌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 될 만큼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품에는 두 명의 은유가 나온다. 언니 은유와 중학생 은유다. 아빠가 중학생 은유에게 갑자기 1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자고 제안한다. 엄마는 은유를 낳자마자 죽었고 아빠와는 소원하게 지냈던 터라 이런 일이 어색하고 심술이 난다. 아빠가 재혼을 선언한 이후로 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은유가 마지못해 쓴 편지는 이름은 같지만 전혀 다른 ‘1982년에 살고 있는 은유’에게 배달된다. 과거의 은유는 현재의 은유에게 답장을 보냈고 이렇게 편지가 이어진다. 은유의 시간과 달리 이상하게도 과거를 사는 은유 언니의 시간은 훨씬 빨리 흐른다. 돌아가신 엄마가 궁금한 현재의 은유를 대신해 과거의 은유가 엄마를 찾아보겠다고 나서며 이야기는 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만약 우리가 가끔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로 엄마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출할 계획을 털어놓는 선배 언니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철부지 행동이야 나무랐겠지만 들어주고 등을 토닥여주었겠지. 하지만 엄마가 되는 순간 꾸짖는 소리가 나오겠지. “학생이 가출은 무슨 가출이야? 나가면 고생인 거 몰라!” 그렇다면 내가 잘 아는 잔소리꾼 엄마와 무심한 아빠의 얼굴이 그들이 지닌 얼굴의 전부는 아닐지 모른다.

가족을 포함한 시절 인연은 어떤가. 나는 이미 누구든 무턱대고 반가운 청춘이 아니다. 만나면 단점이 먼저 보인다. 누구는 착하지만 소심하기 이를 데 없고 누구는 호기심이 많아 오지랖이 넓고 누구는 아는 것 많지만 주위에 사람이 없다. 이들과 갈등이라도 생기면 어쩌다 이 생에서 만났는가 진절머리가 난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읽고 나면 다른 생각이 든다. 이들과 맺은 인연은 뭐라고 할까. 그건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기적 같은 인연이다.

이 책을 읽고 펑펑 울던 십 대 소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십 대가 아니라도 끝까지 읽고 나면 눈물을 참아내기 힘들다. 현재의 중학생 은유와 과거의 은유가 먼 시간을 건너 편지를 주고받는 이야기의 끝에 작가가 숨겨둔 ‘무엇’ 때문이다. 처음에는 시간 판타지인가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보다 지금 우리가 만나기 위해 얼마만큼의 인연이 쌓여야 했던 것인가 싶어 먹먹하다.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모든 순간이 이어지고 이어져 힘껏 맺어졌기 때문이며,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우리가 연결되고자 모든 순간이 온 힘을 다한 결과라는 것을 은유를 만나 알았다. 청소년부터.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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