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펭귄이란
류재향 지음, 김성라 그림 l 위즈덤하우스(2022)
어린이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오래도록 궁금했다. 다섯 살이나 아홉 살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낡은 사진첩에서 꺼낸 사진 속 아홉 살 어린이는 얼굴만 찌푸리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류재향 작가의 ‘욕 좀 하는 이유나’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어린이 곁에 바짝 다가가 욕이란 소재를 풀어낸 작품이었다. 단편집 ‘우리에게 펭귄이란’에서도 작가는 보이지 않는 어린이의 마음에 다가간다. 다정한 손을 지닌 작가의 마법이다. 다섯 편의 동화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조금은 불안한 상태다 어째서인지 아빠가 돌아오지 않거나 어쩌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엄마가 나타나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도 정직하게 어린이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단편 ‘아람이의 편지’에서 아람이는 엄마, 언니와 헤어져 아빠와 산다. 엄마는 멀리서 아람이를 지켜보겠다며 훌륭하게 자라면 그때 편하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엄마의 말 때문에 아람이는 훌륭하게 자라지 못하면 어쩌나, 만약 그래서 다시는 엄마랑 언니를 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고 두렵다. 아빠는 크면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람이는 지금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고 어른이 어린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표제작 ‘우리에게 펭귄이란’에 나오는 용민이는 저녁 식탁에서 분명하게 계획을 밝혔다. 잠시 집을 떠날 예정이며 펭귄을 보호하러 남극에 가겠다고 말이다. 가족들은 어린이의 말이라고 건성으로 듣고 제 말만 쏟아냈다. 용민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은 건 누나뿐이다. 동생이 진지해지면 존댓말을 쓴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어른들은 걸핏하면 애들은 알 것 없고 크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말한다. 대답이 궁색해지면 말을 돌린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란다. 혼자 알아서 잘 자랄 수 있는 어린이는 없다. 애어른이란 도리어 마음이 아픈 어린이다. 적당한 햇볕과 바람이 있어야 식물은 자라고, “최소한의 정성이 있어야 어린이도 잘 자란다.” 결국 어린이는 자신의 말을 이해해 줄 친구나 형제자매가 간절하다. 이조차 없다면 거북이와 달팽이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 혹은 용민이처럼 펭귄을 아껴야 한다. 용민이 아빠와 달리 황제펭귄은 새끼 펭귄을 지극하게 보살피지 않는가.
몇 년 사이 출간된 어린이문학을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일었다. 판타지와 마력이 넘치는 서사 속에서 아무래도 나의 취향은 낡아 보였다. 갈수록 어린이가 서정적인 작품을 읽기 힘들어하지만 그렇다고 필요 없는 건 아니다. 현실의 어린이는 그 흔한 슈퍼 파워도 없이 잘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볼록 거울만큼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도 필요하다. 자극적인 서사와 섬세한 서정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책을 읽고 나니 사진 속 아홉 살 어린이와 오래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 들었다. 초등 고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