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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라진 동독, 그 경험이 나를 글 쓰게 만들었다”

등록 2021-11-25 15:20수정 2021-11-25 15:31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 독일 소설가 예니 에르펜베크
‘모든 저녁이 저물 때’ 등 시대소명 마주하는 비극적 여성서사
제4회 및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기자간담회가 25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려 제5회 수상자인 독일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제4회 및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기자간담회가 25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려 제5회 수상자인 독일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과 독일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2차대전 뒤 분단을 경험했다는 역사적 공통점이 가장 크죠. 이호철통일로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뒤 이호철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런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호철 선생의 작품에 분단의 역사적 경험이 잘 드러나 있다고 보았습니다.”

독일 소설가 예니 에르펜베크가 서울 은평구가 주관하는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한국을 찾았다. 2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에르펜베크는 “개인적으로 20대 초반에 내가 나고 자란 나라 동독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며 “하나의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로 전환되는 경험이 없이는 나는 아마도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에르펜베크는 소설가 배수아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된 <모든 저녁이 저물 때>를 비롯해 많은 소설을 발표한 독일어권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심사위원장으로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소설가 김남일은 “<모든 저녁이 저물 때>의 주인공인 ‘그녀’들은 자신들이 끌어안아야 할 시대적 소명을 피하지 않고, 그 결과는 대개 패배와 누명 그리고 죽음으로 귀결된다”며 “이 작품이 20세기의 비극적 여성 서사로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 이 지점에서다”라고 평가했다.

에르펜베크는 “2008년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게 되자, 죽음이란 무엇인지, 어머니가 다른 시점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지 같은 생각을 해 보다가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다”며 “소설에서 큰 사건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이 구체적으로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이 작품을 쓰면서 저는 문학적 자유를 느꼈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생각의 실험을 해 보는 기쁨을 누렸지요. 사람이 한 번이 아니라 다섯 번의 인생을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본 것이죠. 이렇듯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을 소설로 옮긴다는 발상 자체가 연극적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2015년 유럽 난민 문제를 다룬 소설 <가다, 갔다, 갔었다>(Gehen, ging, gegangen)를 발표한 작가는 “유럽 난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동독 출신이라는 나 자신의 경험이 큰 작용을 했다”고 밝혔다. “동독 출신 국민들은 통일 뒤 서독 시민이 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통일이 아니라 편입이었다. 내 나라임에도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인 것처럼 새로운 것을 배워야 했다. 난민까지는 아니었어도 타인 취급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작가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도 자신의 경험에 바탕해 조언을 건넸다.

“한국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독일에서는 통일을 계기로 문화 공간이 확장되고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어느 쪽도 오만한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분단이라는 인위적 분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시상식은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치르지 못한 제4회(수상자 아룬다티 로이) 시상식과 함께 이날 오후 3시 서울 은평구 진관사 한문화체험관에서 열렸고, 27일 오전 10시에는 은평문화예술회관 대회의실에서 예니 에르펜베크를 초청해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린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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