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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으로 지키고 싶다, 숫자로 바꿀 수 없는 마음을

등록 2021-12-10 05:00수정 2021-12-10 09:54

[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우주소년
사람들은 우리 책방에 대해 궁금해한다. 책 팔아 장사가 되는지, 왜 이렇게 젊은 애들이 카운터에 있는지. 사회 어딜 가도 그렇듯 청년들이 있는 공간은 적기 때문에 우리가 이 곳의 월세를 내는 사람이라고는 누구도 먼저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알바생으로 오해받거나 기특한 젊은이로 여겨지지만 우리는 다른 서점 주인들이 그렇듯이 책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이 공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책방을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우주소년을 설명할 일이 있었다. 사라질 뻔했던 이곳이 마을 출자금을 통해 살아나고 현재는 마을에서 자라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하자, 기자는 그래서 사장이 누구냐고 물었다. 우주소년은 우리가 익숙한 방식만 떠올려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청년들이 운영을 도맡게 된 후에는 특히 더 그렇다. 우리는 기존의 익숙한 방식을 빌리지 않았기 때문에 동등한 위치에서 ‘스스로 배우는 역할’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청년들이 서점을 만들지도 출자금을 내지도 않았지만 책방을 운영할 기회가 주어진 건 책방을 지킨 마을 사람들이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상생에 대한 존중이라고 여긴다. 내가 행복하려면 남도 행복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운영자 개인의 취향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풍요롭게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또, 운영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마을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발화하고, 성장하고, 연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방은 사람들이 와야 가능성이 생기는 공간이다. 책방이 작기 때문에 방문하는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집고,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오래 기억된다. 책을 고르고 적당한 곳에 배치하는 것은 운영자 몫이지만, 어떤 책을 서점에 둘까에 대한 확신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로부터 비롯된다.

책과 사람이 관계 맺는 방식은 참으로 기묘하다. 손님들이 우리 서점에서 책을 골라가 고요히 이야기를 읽었을 시간, 누군가와 그 이야기를 나눴을 시간,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어 살아낼 시간 들을 상상하기만 해도 마음이 단단해진다. 책방에 오는 사람들이 건드리고 품에 안고 나가는 책들이 우리 책방을 구성한다. 책방은 누군가의 소유물로 머무르지 않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마을을 만난다고 말한다. 대형 온라인 서점과 그들이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은 편리하지만, 소비자가 책방과 관계 맺을 기회를 빼앗는다.

책방에 온 지 3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가난하고 정 많은 동네책방에서 배운 건 이 무지막지한 세상 속에서 책방은 유해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할인도 무료배송도 안 되는 동네책방이 세상에 왜 남아있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 때마다 왜 사람들이 할인과 무료배송을 좋아하게 됐는지 생각한다. 사람, 마을, 책과 관계 맺을수록 그에 관련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마음이 책 속에 있다. 그걸 지키고 싶다.

글·사진 현민 우주소년 대표

우주소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수풍로127번길 5, 1층 101호

instagram.com/spaceboy_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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