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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상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한 너에게

등록 2021-12-10 05:00수정 2021-12-14 14:01

[한겨레Book]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위대한 마법사 달벤
그리고 프리데인의 다른 이야기들
로이드 알렉산더 지음, 김영선 옮김

초등 3~4학년, 강성모 그림 l 문학과지성사(2008)

동네책방에서 우연히 6학년 남자 손님을 만났다. 읽는 건 질색이었는데 책방에서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시리즈를 소개받아 차례로 읽고 나서 ‘책이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혼자 책을 사러 온다고 했다. 동화 한 권을 골라 책방을 나서는 소년을 보자 가슴이 뭉클했다. 훗날 어른이 되어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오늘을, 얼마나 재미있을까 두근거리던 이 시간을 기억하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책이 낯설다면 추리, 판타지, 에스에프(SF)처럼 흡인력이 강한 책을 만나 흥미를 느끼는 첫 경험이 필요하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나 <해리포터> 시리즈는 어린이들을 책으로 이끄는 판타지다. 또 하나 어린이를 위한 고전적 판타지가 <프리데인 연대기>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두 차례나 뉴베리상을 수상했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위대한 마법사 달벤>은 이 시리즈의 프리퀄이다. <프리데인 연대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사연을 만나는 재미도 있지만 독립적인 작품으로 읽어도 충분히 훌륭하다. <위대한 마법사 달벤>을 예고편 삼아 시리즈를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판타지의 영원한 주제는 ‘선과 악의 대립’이다. 주인공은 악에 맞서 친구들과 여정을 떠나 수많은 난관을 거쳐 마침내 악을 물리치고 영웅으로 성장한다. 이 같은 판타지의 주제와 플롯은 풍부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해석의 여지가 많다. <위대한 마법사 달벤> 역시 고도로 상징적이다. 위대한 마법사 달벤의 어린 시절을 담은 ‘주운 아이’는 우화 같은 짧은 이야기 속에 읽는다는 것, 지혜를 깨닫는 과정, 삶의 진실을 모두 응축하고 있다.

세 마녀가 키우던 달벤은 절대 먹지 말라고 했던, 커다란 솥에서 끓는 약을 맛보게 된다. 달벤의 손가락에 약이 튀자 손가락을 빨았던 것. 아무것도 몰랐던 귀염둥이 달벤은 손가락을 데는 아픔을 겪으며 세상에 눈을 뜬다. 집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마녀들은 권력을 상징하는 칼과 명성을 뜻하는 하프와 지혜를 담은 책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책을 선택한 달벤은 길을 나서자마자 궁금해 읽는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게 되자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책을 반쯤 읽자 세상의 다른 모습, 잔인함과 고통과 죽음을 만난다. 슬퍼 울던 그는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어제까지만 해도 젊었던 그가 노인이 되어 있었다.

마녀는 책을 건네주며 ‘세상에 공짜는 없고 대단한 보물일수록 대가가 크다’라고 했지만, 지식의 대가는 이것인가. 삶의 끝은 고통뿐일까. 세계라는 책을 차례대로 읽은 달벤이 백발의 노인이 되는 설정이나, 책의 절반을 넘기자 고통과 슬픔이 커지는 것은 기가 막힌 삶에 대한 비유다. 달벤의 책은 어떻게 끝날까.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모든 것은 가능하다.” 책의 결론이자 달벤의 깨달음이다. 동화를 사서 들고 나가던 소년도 세상이라는 책을 서서히 만나게 될 테다.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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