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지구불시착
출근길 버스에서, 쌀쌀하지만 하늘이 파랗고 맑아서 기분이 좋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도 그렇다고 답장을 보내려다 말았다.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손님이 없겠군, 날이 좋으면 좋아서, 비가 오면 비 때문에, 흐리면 흐려서, 연휴면 연휴라서, 이래저래 다양한 핑계로 손님이 없는 곳이 책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투두 리스트’를 생각한다. 화초를 햇빛이 조금 더 닿는 곳으로 옮기고,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을 틀고, 책 먼지를 턴다. 책의 위치를 살짝살짝 바꿔 놓기도 하며 커피를 준비하고 자리에 앉으면 책방에서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은 글을 좀 써야겠다. 그림도 그리고, 의뢰받은 명함을 넘겨야 한다. ‘글이다 클럽’ 모집 피드도 올려야 하고, 주문 들어 온 굿즈를 택배 보내야 한다. 책방에선 잠깐 펼쳐 본 책을 읽다가 두 시간 세 시간 책만 읽기도 하고, 그러다 지인이 찾아오면 지인과 수다 한판이 벌어진다. 지구불시착은 꽤 지인이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지구불시착 관계자라는 직함을 갖고 있으며 그 직함에 불만이 없다. 커피를 스스로 내리고 계산도 스스로 한다. 처음 이곳에 온 사람이라면 직원이 여럿인가 하며 오해를 하는 일도 벌어진다.
어느새 시간은 세 시. 서가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모니터를 타고 넘는다. 나는 빛을 정면으로 받아낸다. 눈이 부셔 눈살이 구겨지기도 하지만 책방에 내려온 햇빛은 감성적으로 충만하고 그윽한 안정감을 준다. 그 사이 손님은 둘 정도 왔다 갔지만 모두 책방 손님은 아니고 카페 이용객이다. 책방은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마을 카페 안에 ‘숍인숍’처럼 들어와 있는데 책방 손님이 많다고 할 수도 없고, 카페 손님이 많다고 할 수도 없다.
손님이 너무 없다 싶으면 나는 입구 쪽으로 시선을 두는 버릇이 있다. 입구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다.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카페 앞에서 좌우로 갈라지고 나면 나는 한숨도 쉬지 않고 시선을 거두는 일에 익숙해 있다. 그럼에도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지구불시착 관계자 중 한 명이 투고한 글이 당선되어 등단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소문내도 되냐고 허락을 받은 후 모두에게 알렸다. 카톡 알림창에 축제가 벌어졌다. 오후에는 축하를 위해 몇몇이 책방으로 온다고 했다.
서가를 서성이던 손님이 따뜻한 책을 선물하고 싶은데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라르메의 시와 마티스의 드로잉이 있는 <목신의 오후>를 권했다. 손님은 천천히 살피다 두 권을 구매하며 하나는 자신의 것이라고 했다. 이제 곧 지구불시착 관계자들이 하나둘 모일 것이다. 떡볶이나 아몬드 봉봉을 사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난 그것들을 먹고 방금 있었던 일을 뿌듯해하며 말할 것이다. 책방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책방 하며 먹고살 만하냐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인들이 사 오는 떡볶이나 치킨을 먹고 산다고.
글·사진 김택수 지구불시착 대표
지구불시착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464
instagram.com/illruwa2
연재우리 책방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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