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리더라는 신화
강한 리더가 위대한 리더라는 환상에 관하여
아치 브라운 지음, 홍지영 옮김 l 사계절(2017)
만약 푸틴이 러시아가 아닌 미국이나 다른 서방 세계 지도자였다면, 그는 이미 선거를 통해 교체되었거나 탄핵당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이후 잠시 등장했던 정치적 다원주의 실험 이후 현재까지 한 번도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였던 적이 없었다. 러시아에서 민주주의는 고르바초프 이후 꾸준히 악화되었고, 이런 문제를 개혁하고자 했던 이들 중 상당수는 땅에 묻혀 있다. 2011~2012년 의회선거조작사건을 규탄하며 수만명의 시민이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벌이는 예외 상황도 있었지만, 결과는 다시 푸틴이었다. 그는 강한 러시아, 강한 지도자를 표방했다.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 아치 브라운은 <강한 리더라는 신화>에서 “어떤 나라에서는 ‘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 그것을 명분으로 리더 한 사람에게 무제한적 권력을 부여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하는가 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최고 리더가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그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역사적으로 볼 때 러시아는 전자의 예이고 미국은 후자의 예”라고 말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노래하지만, 실제로 국가의 많은 일들이 위계질서의 최상위 권력자에 의해 결정되고, 너무 많은 업적이 그들의 것으로 간주된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이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과 권력, 권위가 집중되는 양상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골칫거리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수록 대중은 더욱 ‘강한 리더’를 원하지만, 역사는 이런 지도자일수록 대중의 환상을 이용하거나 교묘한 책략에 의지해 권력을 사유화했음을 보여준다. 어떤 이가 훌륭한 지도자일까? 저자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스페인 총리를 역임했던 아돌포 수아레스를 손에 꼽았다. 1975년 내전 이후 40여년간 권력의 핵심이었던 독재자 프랑코가 죽자 스페인 사회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 시기에 총리에 취임한 수아레스는 프랑코 정권에서 국영방송국 사장을 지낸 바 있는 고위 관료 출신으로 결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가 원했다면, 유·무형의 협박과 탄압이란 정치적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79년 3월30일 스페인 마드리드 코르테스 궁전에서 아돌포 수아레스 스페인 총리가 취임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나 수아레스는 공산당과 사회당 같은 반대세력의 포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1977년 공산당 합법화를 추진하는 과정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좌우 모두에게 공격받았고, 심지어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는 협상과 설득, 그리고 꾸준한 인내를 통해 마침내 연립 정부를 수립했고, 기득권 단절을 원치 않던 군부의 쿠데타 기도를 막아내며 스페인에 입헌군주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그는 결코 강한 리더가 아니었지만, 주어진 상황에 맞춰 공동의 목표를 만들었고, 비상한 위기 상황에서도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정치를 이끌었다. 이때의 정당한 법적 절차란 자신의 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줏대 있는 각료, 그의 실패를 통해 반사이익을 누릴지도 모를 여야 정치인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견해에 대해 숙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결코 피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후임으로 군 출신의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트루먼은 그가 책상에 앉아 “이거 해, 저거 해 명령하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불쌍한 아이크, 군대와는 천지 차이일 텐데” 한탄했다는데, 검찰총장 출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뭐라고 말했을까.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