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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분주할 일 없는 시골 책방, 삶은 외롭지만 매일이 새롭다

등록 2022-11-18 05:00수정 2022-11-18 10:09

우리 책방은요│생각을담는집

배추 80포기를 뽑아서 절이고, 찹쌀풀을 쒀서 식히고, 북어 대가리와 파뿌리 등을 넣고 육수 한솥 끓이고, 김칫소를 만들어 버무리기까지 5일이 걸렸다. 그동안 하루는 책방에서 에세이 창작수업을 하고, 하루는 문화재단으로 달려가 치유의 글쓰기 수업, 또 하루는 피아니스트 송윤원 독주회, 또 하루는 뮤지컬 작곡가 박신애와 작사가 이환, 성악가 지선옥, 싱어송라이터 한승진·한수연·김남윤 등이 펼치는 자연 에세이 음악회, 또 하루는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책방 ‘생각을담는집’에서 진행된 이병률 시인 북토크 현장.
책방 ‘생각을담는집’에서 진행된 이병률 시인 북토크 현장.

시골 책방이 이렇게 매일 분주할 리 없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마당과 책방을 종종걸음으로 오가고 있었다. 그 사이 사방에 펼쳐진 커다란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잎을 떨구었다. 걸음을 멈추고 잠깐 하늘 한번 올려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참 좋구나.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들어와 책방을 시작한 지 어느새 5년째. 마치 이곳에서 평생을 산 것처럼 생활은 익숙하지만 매일 펼쳐지는 풍경은 언제나 새롭다.

시골에 책방을 차린 이유는 단순했다. 은퇴 후 시골에 살고 싶었고, 이왕이면 책방을 차려놓고 누군가 오면 같이 커피 한잔하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나 책방은 시골 마을 끄트머리, 종일 사람 한 명조차 지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바람과 햇살들이 매일 자연을, 나를 바꾸고 있었다. 보고 싶은 책들은 사방에 널려 있고.

책방 ‘생각을담는집’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송윤원 독주회 모습.
책방 ‘생각을담는집’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송윤원 독주회 모습.

어느 날 후배 작가와 함께 북토크를 했다. 경기콘텐츠진흥원, 한국작가회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의 서점 대상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작가 초청 행사를 진행했다. 조용한 책방에 사람들이 찾아왔다. 힘을 얻어 자체적으로 작가 초대, 클래식 콘서트를 열었다. 폭을 넓혀 ‘야드세일’(Yard Sale·쓰지 않는 물건 등을 앞마당에서 파는 행사), 그림전시, 요리교실, 시낭송, 마을 길 걷기 등을 기획 진행했다. 그러면서 매주 독서모임과 에세이창작수업을 했다. 만 4년 동안 이런저런 공지가 나간 것만도 300회를 훌쩍 넘겼다. 같은 용인 지역 책방들과 힘을 모아 서울과 경기, 충청 등의 책방을 초대, 이곳에서 올해 두 번이나 동네책방축제도 열었다.

생각을담는집 외경
생각을담는집 외경

행사가 없는 날의 책방은 조용하다. 가까운 베이커리 카페와 체험 카페들이 주차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도 이곳까지 찾아와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는, 창가에 혼자 앉아 책을 읽다 가는 이는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살아간다. 매주 독서모임을 하는 이들과 글쓰기를 하는 이들은 마음의 풍경을 넓히고 깊이를 더한다. 물론 겉모습이 달라질 리도 만무하고, 유명 관광지처럼 다녀왔다고 자랑할 것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는 안다. 살아갈수록 흔들리는 삶의 축을 바로 세우고 있는 자신을.

삶은 외롭다. 그래서 나는 책방을 구실로 이런저런 일을 도모하는지도 모른다. 책방, 시골 책방을 하는 것은 고독하다. 그래서 신발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걷고 종일 책 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자연이, 책방이 나를 살리는 중이다.

용인/글·사진 임후남 생각을담는집 책방지기

생각을담는집 외경
생각을담는집 외경

생각을담는집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로 59-11

https://www.instagram.com/countrybook_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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