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올까?
이반디 지음, 김혜원 그림 l 사계절(2021)
한 해를 보내는 나만의 ‘리추얼’이 있다. 지난 일기를 찾아 읽으며 격앙된 삶이 부끄러워 옷깃을 여미는 일도 리추얼 중 하나다. 올해의 만남이나 장소를 손꼽거나 낱말을 고르기도 한다. 교수의 식견이나 정치적 신념과 무관하게 지극히 주관적으로 고른 올해의 단어는 ‘친절’이다. 언제나처럼 올해도 오랜 인연들과 자주 얼굴을 붉혔다.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이를 갈았고, 목이 갈라지도록 성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정반대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서는 종종 설레었다. 자주 만나면 원수가 되지만 잠시 반나절을 보내면 긴 여운이 남는 걸까. 그럴 리야 없다. 다만 관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문지기가 있다면 아마도 친절일 테다. 이 점에서 이반디 작가는 천국의 문지기와도 같다.
‘이반디 월드’에는 여우, 너구리, 고양이 같은 동물 친구들뿐 아니라 친절, 다정, 보은 같은 단어가 어깨동무를 하며 어울려 살고 있다. 작가의 전작인 <꼬마 너구리 요요>를 읽고도 여러 날 마음이 말랑말랑했더랬다. <누가 올까?>를 만나고 난 후에도 한동안 군불을 쪼인 듯 몸이 따뜻해져 왔다. 이 순간에도 동화 속 주인공들이 ‘오늘은 누가 찾아올까?’ 궁금해하며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누가 올까?>에는 세 편의 동화가 담겨 있는데 모두 봄이 배경이다. 여기서 봄은 계절 이상이다. 읽는 이에게 봄날을 꿈꾸게 한다. 단편 ‘여우 목도리’에서 의사 고야씨가 어린 여우가 내민 선물을 마다하고 “가져가렴, 나는 이미 다른 걸 너에게 받았다”라고 말한 건 바로 이런 의미를 품고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정직하지만 독자를 끌어안는 품은 넓다. 특히 단편 ‘여우 목도리’나 ‘봄 손님’은 어른 독자가 읽었을 때 더 울림이 크다. 그렇다고 어린이에게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살아온 만큼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중에서 ‘고양이의 수프’는 가장 어린이다운 작품이다. 놀이터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아라는 “아무나 와라. 아무나 와라. 아무나 빨리 와라” 하고 노래를 지어 부른다. 이 말에 흰 고양이와 얼룩 고양이가 다가온다. 두 고양이는 아라가 먹고 있는 솜사탕이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 아라는 솜사탕을 건네고 고양이들은 보답으로 생선 대가리 수프를 대접한다. 콩과 당근보다 더 난감한 생선 대가리 수프라니. 하지만 아라는 용기를 내어 맛본다. 또 고양이들은 아라에게 빨간 실뭉치, 플라스틱 구슬과 낡은 인형을 선물로 준다. 집에 오자 엄마는 “그런 더러운 거 주워 오지 말랬잖아”라고 타박한다. 친절은 베풀기도 어렵지만 받아들이는 데도 마음이 필요하다.
의사 고야씨나 아라 그리고 할아버지는 동물 친구를 만나 잠시 다정한 세계에 다녀온다. 그 세계는 친절과 보은의 티켓으로 갈 수 있다. 그곳에는 솜사탕을 맛보게 해주었으니 좋은 걸 주고 싶은 고양이와 따뜻한 국수 대접을 잊지 않고 노래를 불러준 여우가 산다. 바로 어린이의 세계다. 어린이문학 읽기는 그래서 어른에게 언제나 잊고 있던 자신을 만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초등 저학년.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