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연합뉴스.
확실히 넌 옷을 걸치지 않는 게 좋아 보여 그게 누드는 아니야 웃지 말라는 건 더욱 아니지 처음부터 너의 옷은 옷걸이조차 없다 역병을 경험한 너의 흰색은 고요를 허락했는데 소란을 감싸려는 넓이라고 할 수밖에, 숯이라는 눈빛과 잘 어울리는 흰색 때문에 무엇이든 눈이나 눈동자가 될 수 있기에 지금 나는 검은색을 생각 중이야 이렇게 많은 것들 사이의 흰색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말, 몸의 내부와 외부가 균일한 흰색 위에 각혈의 피 한 방울 떨어지는 냉담한 추위 탓에, 물끄러미 멈춘 너에게 다시 시작되는 폭설은 현실과 환상이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시나브로 네가 녹으니까 돌아오리라는 소식과 풍문은 잔설만이 애써 품고 있다
-송재학의 시 <현대시> 2023년 1월호(한국문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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