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궁전을 죽은 사람처럼 업고 불화하던 풍문을 떠나보내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음역을 가진 새가 미완성 등대에 앉아 일몰의 노래를 부르네 이명처럼 웅웅대던 새벽이 왈칵 눈앞에 쏟아지면 어둠이 몸속 뒤꼍으로 한 페이지 물러나네 병든 안개는 영영 썩지 않을 나무의 객석으로 들이쳐 거미줄 친 얼굴을 만지네 수정되지 못한 슬픔은 뜬눈으로 지하 창밖에 몸을 던지네 폐멸된 어둑서니들이 오래전 그을린 미래를 밤눈으로 드로잉하네 끝과 시작 사이에서 생장하는 삼동의 나무 한 그루에 귀를 대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네를 미는 소리가 들리네 어쩌면 우리의 그 겨울이 될 수도 있었던 전소의 해변
김유태 시인, <현대문학> 2023년 2월호(현대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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