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책방은요 │ 이것은서점이아니다
불안하고 슬프고 아팠던 대학 시절, 친구의 소개로 학내 도서관 활동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시기 그곳에는 나와 비슷하게 슬프고 아픈 친구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서로를 알아본 우리들은 매일매일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그와 관련된 혹은 전혀 관련 없는 대화들을 나눴고, 밥을 먹었고, 술을 마셨고, 머리가 울리도록 울기도, 배가 아프도록 웃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 이 꿈만 같은 시간과 관계를 오래도록 지속하고 확장해 보고자 친구들 중 한 명(현재 ‘이것은서점이아니다’ 공동대표)을 설득해 사업을 기획했다.
우리는 슬프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오늘의 기분을 나누고, 시를 읽다 울고, 음악을 듣다 춤을 출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비슷한 결의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 현재의 안부와 미래의 안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3년 전 우리는 그게 무엇이 됐든 뻔하게 서점만은 하지 말자며 푸하하 웃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한 달 차 서점지기가 되어있다. 뻔한 전개는 싫었으나 결국 우리는 서점이어야 했다. 책으로 가득 찬 집에 사는 것이 꿈인 사람과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대신 책에만 갇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했다. 서점이면서 서점이 아니기로.
서점이 아니기도 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먼저 번듯한 서점이 되는 것이었다. ‘이서점’ 서가에는 약 300권의 책이 꽂혀있다. ‘읽어본 책’, 그중에서도 ‘선물하고 싶은 책’ 혹은 ‘자주 이사를 한다고 해도 반드시 챙겨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이라는 우리만의 모호한 기준을 두고 서가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서점에는 어떤 책들이 있냐 묻는다면 신나기보다는 괴롭고 즐겁기보다는 우울하고 희망차기보다는 절망에 차 있는, 그러면서도 유머와 다정함을 잃지 않는 책들이 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점 이름 ‘이것은서점이아니다’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처럼 누군가의 일상에 새로운 파동을 일으키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새로운 파동’이란,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의 경계에 있는 것들에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라는 말을 통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회의 다양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일들을 해보고 싶었다.
이서점을 쉽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것저것 하는 곳’이다. 서점이면서, 비건 카페 겸 칵테일바, 다양한 공연과 강연이 열리는 문화예술공간, 작은 모임과 프로젝트가 시작될 실험공간인 것이다. 오픈한지 한 달이 된 아직까지는 ‘서점이면서 왜 서점이 아니라고 하나요’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서점이지만 서점이 아닌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이랑의 노래(‘우리의 방’, 2020) 가사처럼 이서점을 통해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활기로 가득 찬 세상과 도시들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내가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나와 닮은 사람들을 어디선가 만나고 닮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광주/글·사진 한채원 이서점 공동대표
이것은서점이아니다 외부 모습.
어쩌다 서점
이것은서점이아니다 내부 모습.
이것은서점이아니다에서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는 모습.
이것은서점이아니다 내부 모습.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이것저것 합니다
이것은서점이아니다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22번길 8-12(충장로5가) 101호
instagram.com/notbookstore_
연재우리 책방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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