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봉을 찾아라!
김선정 지음, 이영림 그림 l 푸른책들(2011)
책이 품은 책을 따라가다 읽는 사람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고, 맥 바넷의 그림책을 보다 존 세스카의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만났다. 동화작가인 김선정의 에세이 <너와 나의 점심시간>을 읽다가 작가의 데뷔작인 <최기봉을 찾아라!>에 이르렀다.
교사로 일했던 김선정은 “나라는 존재를 넘어 세상의 법칙 속에 들어가 자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기가 어린이의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이 과정에서 일그러져 엇나가는 아이와 어른의 무관심에 지쳐 마음을 닫는 아이가 생긴다. 처음부터 동화 속 최기봉 선생 같은 사람이 존재한 게 아니다. <최기봉을 찾아라!>는 유머와 추리가 버무려진 동화이자 무관심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화 속 최기봉 선생은 학교에서 존재감도 없고 반 아이들에게 관심도 쏟지 않는 교사다. 어느 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15년 전 제자에게 도장을 선물로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 선생은 도장판을 만들고 숙제와 발표를 잘하는 아이에게는 엄지 도장을, 말썽을 부리는 아이에게는 울보 도장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한데 도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신 여자 화장실 벽에도, 결재 서류에도, 교장 선생님 직인이 있어야 하는 곳에도 ‘최기봉 엄지척 도장’이 찍혀 있다. 갑자기 화제의 중심에 선 최기봉 선생은 고민 끝에 말썽꾸러기 형식이와 현식이 그리고 말없이 청소만 하는 공주리를 도장특공대로 임명하고 범인을 찾아 나선다. 최기봉 선생은 교사 생활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고한 특공대에게 떡볶이와 순대도 사주었다. 학교에서 일하는 박 기사의 고백을 듣고 형식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기봉 도장’이 분실되고 교장 선생이 노발대발하는 일련의 소동이 익살스러워 웃던 독자라도 중반이 넘어가면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왜 그동안 최기봉 선생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유보라 선생이 최기봉 선생을 싫어한 이유는 무엇인지, 공주리가 그토록 청소를 열심히 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하나씩 알게 된다.
김선정 작가는 교사 시절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관찰해서 알게 된 것이나 선생님과 함께한 추억을 써보라는” 숙제를 내곤 했다. 아이들이 쓴 글에 따르면 김선정 선생은 “유명하지 않은 작가”이며, 공기 대결을 할 때 “목숨 걸고 하자”라고 말만 하고 지면 끝인 사람이다. 어쩌다 한번 어린이를 만날 때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오만 가지 일이 교실에서 생겨난다. 그런데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선생님에 대해 써보라고 한 건 “교사와 겹치는 추억이 없는 아이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교실에서 “함께한 추억이 있어야 서로에게 입체적인 존재가 된다.” 마치 최기봉 선생이 특공대를 만들고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자 보이지 않던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되듯 말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과 동화를 함께 읽고 “우리 선생님은 누구인가”를 써보고 싶은 책이다. 초등 3~4년.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