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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와 생일이 같은 작가는 어떤 세계를 열어줄까 [책&생각]

등록 2023-09-22 05:01수정 2023-09-22 09:47

우리 책방은요 │ 읽을마음

경기 광명에 위치한 책방 읽을마음은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선별해 ‘블라인드 북’으로 소개한다.
경기 광명에 위치한 책방 읽을마음은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선별해 ‘블라인드 북’으로 소개한다.

조용한 서점에 ‘딸랑’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들어온다. 창문 없는 책방의 유일한 문이 열리면서 나는 도어벨 소리다. 책방골목과 책방 사이의 분리된 공간이 잠시 하나가 된다. 일층이지만 문턱을 만든 낯선 공간에 용기 내어 들어온, 한 손님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다. 문이 닫히고, 다시 분주한 골목과 책방은 서로 다른 공간이 된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한 손님은 벽면 가득히 꽂힌 수많은 책 사이에서 자신의 책을 찾는다. 제목도 작가도 쓰여 있지 않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한 권의 책을 꺼내서 책에 적힌 날짜를 바라본다. 그 날짜는 그의 생일이다. 그리고 그 책을 쓴 작가의 생일이다.

같은 날짜가 적힌 책이 여러 권이 있다. 서가에서 모두 꺼내 책표지를 본다. 앞면엔 책 속의 문장이 쓰여 있고, 뒷면엔 책에 대한 힌트 키워드가 담겨 있다. 같은 날짜의 책 중, 조금 더 손님과 주파수가 맞는 문장과 키워드를 가진 책이 있을까? 손님은 고민 끝에 네 권의 책 중에 두 권을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이번 손님은 들어와서 나가기까지 2분이 채 걸리지 않았군. 오늘도 책방의 평균 체류 시간은 줄어든 것 같다. 한때 점심시간에 급히 달려와 결제하고 다시 뛰어나가기까지 15초가 걸린 손님이 보인 뒤로,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상에서 가장 체류 시간이 짧은 서점’을 노려보는 건 어떨까 고민해 봤다. 물론, 오래 머물면서 책 사이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을 보는 뿌듯함이 크다 보니 진지하게 고민하진 않았다.

책방 읽을마음은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선별해 ‘블라인드 북’으로 소개한다.
책방 읽을마음은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선별해 ‘블라인드 북’으로 소개한다.

책방 읽을마음은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선별해 ‘블라인드 북’으로 소개한다.
책방 읽을마음은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선별해 ‘블라인드 북’으로 소개한다.

지난 9월1일 열린 2023대한민국독서대전에 읽을마음은 ‘9월1일’ 책만 전시했다.
지난 9월1일 열린 2023대한민국독서대전에 읽을마음은 ‘9월1일’ 책만 전시했다.

손님이 나갔으니 본업을 시작해볼까. 서점업으로 등록했지만 실상은 제조업에 가까운 이 책방은 매일매일이 책 포장의 연속이다. 한 권의 책이 팔리면 그만큼 다시 포장해서 서가에 채워 둔다. 포장비를 따로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포장비를 최소화하고 내 인건비를 포기하고서라도 책을 조금 더 팔고 싶다. 작가님들과 출판사들이 이 나라에서 책밥 먹는 건 무리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내 영역에서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연 책방이기 때문이다.

사실 감사할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두어야 했던 지난 시간에, 나는 포장할 일 없이 마음껏 책을 읽으면서 ‘울면서 책 포장하는 호사를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가끔씩 슬슬 울어야 하나 고민도 하게 됐으니 여기까지 잘 왔다고 생각한다. 집 앞 슈퍼 사장님은 내가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같은 속도로 어슬렁어슬렁 야채를 나르고, 옆집 라멘집 사장님은 문 연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육수를 끓이고, 앞집 이자카야 사장님은 새벽같이 나가 횟감을 받아 오고 아이들 등원을 시킨다. 서점도 장사하는 곳이니 그만큼 부지런해야 하는 게 사실 마땅하다.

잠시 눈을 들어 책방 문을 바라본다. 책방 문 맞은편으로 예쁜 음식점이 보인다. 책방이 처음 이 골목으로 이사왔을 때는 건강원이었던 자리다. 배즙을 만들 배나 김장을 할 배추가 쌓여 있었고, 가끔은 염소가 앉아서 배추를 씹고 있었다. 조용한 골목에 더 조용한 책방이 생긴 뒤, 골목에는 예쁜 음식점과 카페가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방 영업이 끝나고 하나 더 있는 겉문까지 닫으면, 창문 없는 책방은 어둠에 잠긴다. 바깥에서는 파란 벽면에 책 한 권이 세워져 있다. 책 모양으로 만든, 책방의 겉문이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책을 찾은 손님은 저 문을 열고 다시 분주히 돌아가는 세상 어딘가로 행진했다. 부디 어디에선가 오늘처럼 자신을 돌볼 줄 알고 작은 의미에서 큰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을 자주 맞이하기를 바란다. 문을 열고 책방을 깨운 순간처럼,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펼쳐서 그 속의 이야기를 깨우는 시간도 충만히 누리기를 응원한다.

광명/글·사진 이한별 읽을마음 책방지기

읽을마음
경기도 광명시 광명로893번길 13-1(광명동) 1층
www.starbooksh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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