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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사달 아사녀’보다 더 슬픈 연인들

등록 2007-08-17 19:40수정 2007-08-17 19:45

내 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내 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내 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노천희 엮음 / 삶이 보이는 창

수천을 헤아리는 장서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않고 채광석 시인의 옥중서간집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를 들겠다. 특별한 추억이 있거나 골동품의 가치가 있어 그런 건 아니다. 이 책은 한 젊은이의 연인을 향한 그리움이 밴 연애편지다.

〈속울음〉은 내 작은형의 유고집이다. 경남 마산 월영동 소재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했을 때 쓴 일기를 엮었다. 1주기를 맞아 150여 부를 만들어 형을 아는 이들에게 돌렸다. 쪽수도 얼마 안 되는 작은 책이지만 내게는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다. 일전에 자신의 책을 들고 집으로 찾아온 분에게 답례로 한 권 드렸다가 아내의 핀잔을 달게 들었다.

30년 만에 빛을 본 〈내 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는 두 가지 점이 놀랍다. 먼저, 청춘남녀의 사랑이 어찌 이리 애절할 수 있을까? 강제징집당한 학생운동 출신 졸병과 중학교에 갓 부임한 신출 여교사의 사연이 애달프다. 둘의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식을 줄 모른다. “당신을 떠나온 지 벌써 이틀이 지났습니다. 당신을 보러 갈 날이 이틀 당겨졌습니다”라는 ‘노야’의 편지에 ‘내 님’은 이렇게 화답한다. “내 뼈가 부서지고 피가 말라 없어지더라도 너만 있으면 난 살 수가 있다.” 다시 ‘노야’다. “당신의 사랑의 결정체인 그 기록은 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아픔을 줍니다.”

그 기록이란 ‘내 님’의 병영일기를 말한다. ‘내 님’은 어떻게 그 열악한 환경에서 날마다 일기를 써서 어디다 숨겨 놨다 ‘노야’에게 건넬 수 있었을까? ‘내 님’은 틈나는 대로 책을 읽으며 공책 8권 분량의 철학 에세이를 군복무 중 완성한다. 일기는 편지와 더불어 완전한 사랑에 다가선다. 일기는 변하지 않는 군대의 실상을 전하는 보기 드문 기록이다. “좆같다”를 1만 번 되뇌어야 제대할 수 있다. 일기는 정말 “이상한 곳”에서 외롭게 싸우는 철학인의 내면을 담았다.

“노야! 만약에 내가 나의 철학과 사상을 배반해서 살아왔다면,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는 안일과 현명함을 지녔다면, 편하고 모든 상황과 역사와 진리와 양심 그리고 실존과 자유를 모르는 척 외면해 버리고 슬쩍 비켜 버리고 뭐 세상이란 그런 거 아니냐 하고 대다수 인간들처럼 슬쩍 비켜 버린 소득으로 중위계급장을 달고 그저 큰소리나 탕탕 치고 인화할 줄 모르고 기고만장한 그런 기분으로 계속 지내고 아버님 어머님께는 얄팍한 효도로 노야 너에게는 걱정을 덜 끼치고 살아왔다면, 그것은 자신의 부정이 되었음을 요즈음 확신하고 있다.”


최성일 / 출판칼럼니스트
최성일 / 출판칼럼니스트
빛나는 사랑일수록 시기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 ‘내 님’은 군에서 살아 오지 못한다. 제대 넉 달을 앞두고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군복무를 하면서 휴전선 인근 강원 내륙지역이 여름에 무지 덥다는 사실을 알았다. ‘쌍팔년’ 한여름에 입대해 논산 육군 ‘제2훈련소’ 군번을 받았으되 신병교육은 중동부전선의 사단훈련소에서 받았다. 우리는 신병훈련을 매듭짓는 장거리 행군을 제꼈다. 혹서기 행군 도중 병사가 셋이나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가슴시린 사랑을 받았으리라.

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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