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아사노 아스코 지음·양억관 옮김/해냄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배터리>
아사노 아스코 지음·양억관 옮김/해냄 내게도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추억이 있다. 개교기념일을 맞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4강전 두 경기를 보러 대학에 다니는 큰형과 야구장을 찾았다. 초등학생 눈에도 서울운동장은 ‘인천공설운동장 야구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여름방학 때 봉황대기는 관중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표를 못 구해 그냥 집으로 왔다. 이런 체험들이 나를 야구광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일본은 진짜 야구의 나라다. 〈일본 근대의 풍경〉에 실린 20세기 초반의 야구 열기를 풍자한 만화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학생들이 야구에 정신을 빼앗겨 책을 읽지 않는 통에 책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이런 만화가 그려질 정도로 야구는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국민적 스포츠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읽은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태양을 쳐라〉 이후 30년 만에 맛보는 감동이다. 가장 두꺼운 2권을 독파하자 읽는 속도가 붙었다. 〈배터리〉는 입학 직전부터 2학년 진급을 코앞에 둔 봄방학까지 중학교 1학년의 학교생활이 축을 이루는 ‘소년’ 소설이다. 또한 하라다 다쿠미의 가족이 중심인 가족소설이다. 어린 독자를 위한 배려인지 다쿠미 가족의 특징을 거듭 말하지만 그리 거슬리진 않는다. 〈배터리〉는 야구성장 소설이다. 몸이 약해도 공부를 못해도 야구는 할 수 있다는, 남보다 강한 몸을 가진 놈만이 야구를 즐긴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다쿠미 외할아버지의 야구론이 주는 울림은 크다. 배터리는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를 ‘싸잡아’ 일컫는다. 다쿠미는 천재성이 엿보이는 투수이나 성격은 꽤 까칠하다. 나가쿠라 고는 다쿠미의 위력적인 공을 너끈히 받아내는 듬직한 포수다. 고는 사람됨도 좋다. 다쿠미와 고가 아옹다옹 티격태격하면서 내용이 전개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의 외연이 넓어진다.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원들과 맞상대인 요코테 제2중학교 선수들도 단순한 보조배역에 머물지 않는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하는 거라 그렇다. 소설의 대미는 영화 〈왕의 남자〉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물론 외줄에서 하늘로 치솟은 장생과 공길보다 〈배터리〉에 등장하는 중학교 야구선수들은 훨씬 희망차다. 앞날이 밝다.
또 적어도 다쿠미와 그의 벗들은 공을 몰래 감췄다가 한눈파는 주자를 아웃시키는 졸렬한 야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작가는 이런 소설을 쓸 수 없다. 작품성이 뛰어나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설령 쓰더라도 밀리언셀러가 되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장담하건대 절대로! 우리에겐 그런 야구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시골 고등학교 야구부를 몇 번이나 고시엔 대회에 진출시킨 다쿠미의 외할아버지 이오카 요조는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동네야구장도 본루에서 보면 투수판이 “정확히 동북동 위치에 박혀 있다.” 서울 목동야구장이 왜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서울운동장 야구장’ 철거는 문화적 폭거다. 최성일/출판칼럼니스트
아사노 아스코 지음·양억관 옮김/해냄 내게도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추억이 있다. 개교기념일을 맞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4강전 두 경기를 보러 대학에 다니는 큰형과 야구장을 찾았다. 초등학생 눈에도 서울운동장은 ‘인천공설운동장 야구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여름방학 때 봉황대기는 관중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표를 못 구해 그냥 집으로 왔다. 이런 체험들이 나를 야구광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일본은 진짜 야구의 나라다. 〈일본 근대의 풍경〉에 실린 20세기 초반의 야구 열기를 풍자한 만화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학생들이 야구에 정신을 빼앗겨 책을 읽지 않는 통에 책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이런 만화가 그려질 정도로 야구는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국민적 스포츠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읽은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태양을 쳐라〉 이후 30년 만에 맛보는 감동이다. 가장 두꺼운 2권을 독파하자 읽는 속도가 붙었다. 〈배터리〉는 입학 직전부터 2학년 진급을 코앞에 둔 봄방학까지 중학교 1학년의 학교생활이 축을 이루는 ‘소년’ 소설이다. 또한 하라다 다쿠미의 가족이 중심인 가족소설이다. 어린 독자를 위한 배려인지 다쿠미 가족의 특징을 거듭 말하지만 그리 거슬리진 않는다. 〈배터리〉는 야구성장 소설이다. 몸이 약해도 공부를 못해도 야구는 할 수 있다는, 남보다 강한 몸을 가진 놈만이 야구를 즐긴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다쿠미 외할아버지의 야구론이 주는 울림은 크다. 배터리는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를 ‘싸잡아’ 일컫는다. 다쿠미는 천재성이 엿보이는 투수이나 성격은 꽤 까칠하다. 나가쿠라 고는 다쿠미의 위력적인 공을 너끈히 받아내는 듬직한 포수다. 고는 사람됨도 좋다. 다쿠미와 고가 아옹다옹 티격태격하면서 내용이 전개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의 외연이 넓어진다.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원들과 맞상대인 요코테 제2중학교 선수들도 단순한 보조배역에 머물지 않는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하는 거라 그렇다. 소설의 대미는 영화 〈왕의 남자〉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물론 외줄에서 하늘로 치솟은 장생과 공길보다 〈배터리〉에 등장하는 중학교 야구선수들은 훨씬 희망차다. 앞날이 밝다.
최성일/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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