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모술수 고전’에서 리더십 진수 뽑아내다
〈한비자, 권력의 기술〉
이상수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5천원 말더듬이 불운한 책사가 혀로 쓴 10만자
‘나와 조직 다스리는 법’ 7가지로 재해석
‘교묘한 속임수는 서투른 성실함만 못해’ 바야흐로 유세의 계절이다. 오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새벽부터 거리로 나선다. 청와대행 ‘차표’를 손에 쥐려는 절박함이 펼침막마다 절절 끓는다. 알약이 쏟아지듯 말도 넘쳐난다. 2200여년 전의 중국도 그러했다. 전국시대 끝자락을 붙잡고 패권을 다투던 군왕들이 즐비했고, 곁에서 건곤일척의 꾀를 내던 책사들이 가득했다. 한비자도 다르지 않았다. 어찌 야망이 없었으랴. 하지만 그는 말더듬이였다. 무쇠처럼 강고한 뜻을 버들잎 같은 혀가 받쳐주지 못했다. 그러니 한비자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세의 어려움을 논한 ‘세난’을 비롯해 10만여자의 글을 손이 아닌 ‘혀’로 썼다.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의 ‘참고서’로만 알려졌던 <한비자>가 고독한 침묵에서 호출돼 리더십 ‘교과서’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제자백가의 논리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는 한비자가 생애를 기울여 탐구한 ‘권력의 기술’을 ‘나를 다스리는 법’ ‘조직을 끌어가는 이치’로 새롭게 해석해냈다. “권모술수는 리더십의 적”이며 “교묘한 속임수는 서툰 성실함보다 못하다”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잘 차려진 고전의 잔칫상을 두루 맛볼 준비가 된 셈이다. 지은이는 리더십 지침으로 일곱 가지를 든다. 고전에서 따온 글을 근거로 삼아 굴비 두름처럼 엮인 명제들은 논리적이고 선명하지만, 선명하므로 글맛은 건조한 편이다. 곧바로 알곡을 솎아내면 이렇다. 1)리더는 용의 등에 올라탄다. 용은 최고 리더를 가리킨다. 용의 등에 올라타는 일은 비범한 능력을 갖춘 이들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 최고 리더가 될 수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2)리더는 사람들의 요구를 재빨리 알아채며 상황을 탓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내는 인간형이다. 그는 생각하며 움직이고 움직이며 생각한다. 3)그러므로 리더는 부하의 충성에 의지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마음을 내도록 한다. 애초부터 충직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4)그러므로 리더는 사랑·미움을 넘어서 자기와 싸워 이겨야 한다. 자기단련이야말로 리더의 최고 덕목인 것이다. 5)하지만 교만은 금물이다. 세상의 모든 지혜를 빌리려면 ‘대화의 햇볕 정책’을 써야 한다. 6)바다가 컴컴하다 하여 배를 세울 수는 없듯이 불확실성 속에서도 리더는 판단과 실행을 끌어내며 7)마지막까지 책임을 지고 새로운 리더가 자랄 수 있는 텃밭을 일궈낸다면 더 보탤 것이 없다.
이 일곱 계명을 떠받치는 것은 믿음이다. 한비자는 공자의 수제자 증자를 예로 들고 있다. 얘기인즉,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아들이 따라오려고 울며 보채자 아내는 꾀를 내어 “시장에 다녀온 뒤 돼지를 잡아주마”고 둘러댄다. 시장에서 돌아온 아내는 화들짝 놀란다. 증자가 돼지를 죽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뜯어말리려 하니 증자는 “어린이에게 장난으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되오. 어버이를 보고 배우는 아이에게 거짓을 말하면, 자식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는 것이고 자식이 어미를 믿지 않으면 가르침이 이뤄지지 않소”라고 말하고는 돼지를 삶아버린다. 정직·일관·신뢰와 같은 덕목이 스며 있는 일화다. 지은이는 이런 삽화를 <논어> <맹자> <사기>뿐 아니라 <전국책> <자치통감> <삼국사기> 등에서 뽑아내 독자의 이해를 거든다. 옛글의 향이 시루떡처럼 푸짐하다. 또는 무르익었으되 군내 없는 묵은지에 견줄 수도 있겠다.
난세에 태어나 정치적 소신을 펴지 못한데다 동창생의 모략으로 사약을 받아 숨진 한비자. 고독했던 한 사상가를 호명한 지은이에게 한비자는 이런 화답을 ‘쓰지’ 않을까. “나의 침묵은 너의 언어로 번역되기를 꿈꾼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이상수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5천원 말더듬이 불운한 책사가 혀로 쓴 10만자
‘나와 조직 다스리는 법’ 7가지로 재해석
‘교묘한 속임수는 서투른 성실함만 못해’ 바야흐로 유세의 계절이다. 오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새벽부터 거리로 나선다. 청와대행 ‘차표’를 손에 쥐려는 절박함이 펼침막마다 절절 끓는다. 알약이 쏟아지듯 말도 넘쳐난다. 2200여년 전의 중국도 그러했다. 전국시대 끝자락을 붙잡고 패권을 다투던 군왕들이 즐비했고, 곁에서 건곤일척의 꾀를 내던 책사들이 가득했다. 한비자도 다르지 않았다. 어찌 야망이 없었으랴. 하지만 그는 말더듬이였다. 무쇠처럼 강고한 뜻을 버들잎 같은 혀가 받쳐주지 못했다. 그러니 한비자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세의 어려움을 논한 ‘세난’을 비롯해 10만여자의 글을 손이 아닌 ‘혀’로 썼다.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의 ‘참고서’로만 알려졌던 <한비자>가 고독한 침묵에서 호출돼 리더십 ‘교과서’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제자백가의 논리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는 한비자가 생애를 기울여 탐구한 ‘권력의 기술’을 ‘나를 다스리는 법’ ‘조직을 끌어가는 이치’로 새롭게 해석해냈다. “권모술수는 리더십의 적”이며 “교묘한 속임수는 서툰 성실함보다 못하다”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잘 차려진 고전의 잔칫상을 두루 맛볼 준비가 된 셈이다. 지은이는 리더십 지침으로 일곱 가지를 든다. 고전에서 따온 글을 근거로 삼아 굴비 두름처럼 엮인 명제들은 논리적이고 선명하지만, 선명하므로 글맛은 건조한 편이다. 곧바로 알곡을 솎아내면 이렇다. 1)리더는 용의 등에 올라탄다. 용은 최고 리더를 가리킨다. 용의 등에 올라타는 일은 비범한 능력을 갖춘 이들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 최고 리더가 될 수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2)리더는 사람들의 요구를 재빨리 알아채며 상황을 탓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내는 인간형이다. 그는 생각하며 움직이고 움직이며 생각한다. 3)그러므로 리더는 부하의 충성에 의지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마음을 내도록 한다. 애초부터 충직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4)그러므로 리더는 사랑·미움을 넘어서 자기와 싸워 이겨야 한다. 자기단련이야말로 리더의 최고 덕목인 것이다. 5)하지만 교만은 금물이다. 세상의 모든 지혜를 빌리려면 ‘대화의 햇볕 정책’을 써야 한다. 6)바다가 컴컴하다 하여 배를 세울 수는 없듯이 불확실성 속에서도 리더는 판단과 실행을 끌어내며 7)마지막까지 책임을 지고 새로운 리더가 자랄 수 있는 텃밭을 일궈낸다면 더 보탤 것이 없다.
〈한비자, 권력의 기술〉
난세에 태어나 정치적 소신을 펴지 못한데다 동창생의 모략으로 사약을 받아 숨진 한비자. 고독했던 한 사상가를 호명한 지은이에게 한비자는 이런 화답을 ‘쓰지’ 않을까. “나의 침묵은 너의 언어로 번역되기를 꿈꾼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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